이효범의 여행기 65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31(산티아고)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1(산티아고)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1(산티아고)  구녕 이효범  산티아고까지는 25km 남았다. 오늘은 15km만 걷고, 내일 새벽 동녘에 붉은 해가 뜰 때 개선장군처럼 포부도 당당하게 입성해야지 하고 계획했다. 그런데 숙소를 예약한 라바콜라(Lavacolla)에 오니 점심밖에 안 되었다. 오는 길이 상대적으로 파도가 잔잔했고, 내리막이었다. 그리고 알림판에 20km 남았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등에 멘 배낭이 초등학교 때 허리춤에 찼던 도시락같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 시골에서 하루를 썩을 수는 없다, 그냥 직진하자. 내가 누구인가. 개구멍이 전공이 아닌가.  산 마르코스(San Marcos)에 오니 길옆에 조그맣고 깔끔한 성당이 있다. 순례..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30(살세다)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0 (살세다)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0 (살세다)  메리데(Melide)에서 살데다(Salceda)까지 25km를 걸어왔다. 어제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글을 쓰려고 1층 다용도실로 내려오니까, 한국 할머니 두 사람이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나를 보더니 미리 알았으면 밥만 더 하면 되었는데 하며 미안해한다. 75세, 70세인데, 이번에 세 번째라고 한다. 동생이라는 분은 관절주사를 맞고 왔고, 지금 허리 진통제를 먹으며 걷고 있단다. “나는 한 번도 힘든데, 아프다면서 왜 세 번씩이나 걸어요?” 내가 물었다. 동생이라는 분은 웃으며, 산티아고에 향수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고 했다. 왠지 자꾸 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가 60%, 성취감..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9(멜리데)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9(멜리데)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9(멜리데)  구녕 이효범  오늘은 짧게 걷기로 한다. 이곳은 산을 낀 스페인의 전형적인 시골 지역이어서, 한 25km 정도에 순례자들이 묵을 적당한 마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제 조금 무리해서, 거리를 줄인 것이다. 떠나기 전에 거울을 보니 웬 상노인이 얼굴이 굳어있다. 염색이 지워져 흰머리가 가득하다.   8시에 호텔을 나서니 조금 늦어서인지 단체 순례자들이 여러 팀이다. 학생들은 동서고금이 똑같다. 말 같이 가는 놈, 황소처럼 길을 쓸고 가는 놈, 이것저것 참견하며 가는 놈, 어떤 여자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멋을 낸다고 꾸몄는데, 애교가 있다. 내 앞에 무리에서 떨어져 두 여자아이가 간다. 한 아이는..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28(팔라스 데 레이)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8 (팔라스 데 레이)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8 (팔라스 데 레이)  구녕 이효범  오늘도 안개가 자욱하다. 복숭아 2개, 토마토 1개를 먹고 길을 떠난다. 호수를 지나 처음 오르막이 벅차다. 안개와 숲이 만드는 동굴 같은 오르막을 30분 오르니 푸른 초지의 능선이 나온다. 오늘은 무슨 길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갑자기 내가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생을 산다면 어떻게 살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과거의 가난, 수많은 방황, 구차함, 쓸쓸함과 황량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면에서 자꾸만 돌아가 보라고 강요한다. 어릴 때는 나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는 거의 변함이 없을..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7(포르토마린)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7 (포르토마린)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7 (포로토마린)  구녕 이효범 어제 사리아 강변에서 저녁으로 먹다 남은 케밥과 음료수로 간단히 아침을 마쳤다. 떠나려는데 사위와 딸들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버이날이라고 안부를 묻는 인사이다. 나는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걱정해 주니 고맙다. 늦둥이 아들은 소식이 없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등에 배낭을 매려는데 묵직하다. 3개월 먹을 혈압약, 별로 입지 않은 반바지, 치약과 크림도 줄었을 것이니 처음보다는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래도 쓸데없는 것은 다 버린다. 아직도 순례 시작할 때 산 초코렛이 남아 있는데, 망설이다가 이것만은 그냥 남겨둔다. 7시 30분 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다. 그래도 순례길은 만원이다..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6(사리아)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6(사리아)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6(사리아)  구녕 이효범  어제는 3시간 동안 어렵게 고개를 올라, 오 세브래이로에 도착했는데, 예약한 숙소가 없어 택시 타고 다시 고개를 내려가고, 오늘 아침은 다시 택시를 타고 고개를 오른다. 이번 순례길의 최대 오점이다. 잊지 못할 것이다. 기기를 다루는데 본래 어둡기는 하지만, 수첩에 적어가며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택시 타고 어디까지 갈까? 오늘은 조금만 걷고, 사리아(Sarria)에 가서 정신을 다시 가다듬은 다음, 나머지 100km 구간을 잘 걷는 것이 좋겠다. 구글 지도를 보니 오 세브레이로에서 트라야카스텔라까지는 순례길이 차량 도로에 접해 있다. 차..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5(오 세브레이로)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5(오 세브레이로)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5(오 세브레이로)  구녕 이효범  오늘은 1330m 산을 넘어야 한다고 한다. 몇 번 망설였으나 내가 누군가. 재작년에는 코로나 중에도 고등학교 동기들과 알프스 트레킹을 갔다 왔고, 작년에는 캐나다 로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 아닌가. 빨리는 못가도, 느리게 오래 갈 수는 있다. 오직 은근과 끈기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이다. 나이는 조금 먹었지만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보를 잘못 알았다. 고개는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초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심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비록 차들이 쌩쌩 달리는 협곡의 도로 옆을 지나왔지만 평지였다. 그런데 이제 강원도 산골처럼 한적해지면서..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구녕 이효범  아침에 길을 준비하는데 비가 세차다. 망설여진다. 우리나라 중년 부부가 1층 식당에서 막 식사를 끝내면서 내려오는 나를 보더니, “어제 늦게 오신 모양이에요.” 인사를 한다. 여자의 얼굴에는 ‘나는 이미 아주 충분히 걸었음’이라는 징표가 드러나 있다. “몸이 좋지 않아 버스를 타고 산을 넘어왔어요.” 내가 미안해하자, “아이쿠, 그것 참 잘했어요. 우리는 죽는 줄 알았어요.” 여자가 말을 받는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걸으니 얼마나 서로 위안이 되겠어요. 혼자 걸으니 너무 외로워요.” 나도 모르게 진심이 새어 나왔다.  남자는 여행 책자를 펼치더니 앞으로 ..

인문학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3(폰페라다)

o 인문학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3(폰페라다)o 인문학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3(폰페라다)  구녕 이효범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안 맞는 곳이 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가 그랬다. 우선 너무 추웠다. 여기 5월의 스페인 날씨가 본래 그런지 아니면 이상 기후 때문인지, 순례자나 여기 사람들도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강풍까지 불었다. 숙소도 편안하지 못했다. 열쇠로 문을 타지 못해 결국 안내자를 불러야 했고, 어렵게 배우기는 했지만 혹시 안에서 잠그고 열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 몰라, 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가슴을 조이며, 춥게 자야 했다.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젊었을 때 가족들과 소나타를 타고, 뉴저지에서 텍사스를 거쳐 로스앤젤레스까지 횡단한 적이 있는데, 미시시피주를 지날 때 ..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구녕 이효범  오늘은 32km를 걸으려고 한다. 날이 밝기 전에 호텔을 떠났다. 이미 길을 나선 순례자들이 있어 그들을 따라간다. 한참을 가는데 성당에 불이 환하다. 입구에 가까이 가니 성당이 아니라 별 다섯 개짜리 최고급 호텔이다. 무슨 호텔이 이렇게 성당처럼 멋진 외벽을 했나 감탄하며 그냥 들어갔다. 어제 잔 호텔에서 깜박 잊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레온에서 한 군데는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미모의 안내인이 웃으면 찍어준다.   도시를 빠져나오니 꽤 긴 공단으로 이어진다. 공장 길은 순례자에게는 피하고 싶은 길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