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이효범 2024. 5. 9. 02:57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구녕 이효범

 

아침에 길을 준비하는데 비가 세차다. 망설여진다. 우리나라 중년 부부가 1층 식당에서 막 식사를 끝내면서 내려오는 나를 보더니, “어제 늦게 오신 모양이에요.” 인사를 한다. 여자의 얼굴에는 나는 이미 아주 충분히 걸었음이라는 징표가 드러나 있다. “몸이 좋지 않아 버스를 타고 산을 넘어왔어요.” 내가 미안해하자, “아이쿠, 그것 참 잘했어요. 우리는 죽는 줄 알았어요.” 여자가 말을 받는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걸으니 얼마나 서로 위안이 되겠어요. 혼자 걸으니 너무 외로워요.” 나도 모르게 진심이 새어 나왔다.

 

남자는 여행 책자를 펼치더니 앞으로 갈 노정을 설명해 준다. 나는 책을 사지 못했다. 아마 샀더라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앞길을 소상히 알면, 줄거리를 이미 알고 보는 영화처럼 재미가 없으리라. 공주대학교에는 대학원 과정에 사주, 풍수, 성명 등을 연구하는 명리학 과정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계룡산이 가까이 있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계룡산에서 1년 도를 닦으며 다른 산에서 10년 도를 닦는 것보다 더 권위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립 교육과정에는 이런 지식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재야의 쟁쟁한 고수들이 들어오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이 과정에서 동서 비교 철학을 가르쳤지만, 사실 사주가 학문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태어난 년, , , 시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누가 선뜻 동의할 수 있겠는가?(물론 사주는 절대적인 결정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적선이나 노력 등에 의해 운명도 바뀌어 질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년과 월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환경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볼 때, 풍년에 태어난 사람하고 흉년에 태어난 사람하고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많지 않은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봄에 태어난 사람하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하고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이다. 그런데 내 사주를 봐주겠다는 제자가 종종 있다. 내가 극구 사양하는데도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생님은 말년에도 재산 걱정하지 않고 살 운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다. 글쎄, 맞는 말이다. 내 경제를 국가가 책임지니까, 이렇게 해외에 나와 돈을 펑펑 쓰고 있지 않은가. 그 제자에게 여자 복은 어떤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막상 알 수 있다면, 그것이 그렇게 좋을까. 나는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인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개다를 반복한다. 그런데도 나는 오히려 좋았다. 우선 바람이 불지 않아 좋았고, 온도가 12도인데도, 비옷을 입고 걸어서 그런지, 등이 땀이 나서 살 것 같았다. 2시간쯤 걸었을까, 어떤 부촌을 걷는데 조그만 성당이 나왔다. 거대한 성당보다 나는 이런 아담한 성당이 오히려 정이 간다. 그런데 그 옆을 보니까 아니 자연석 위에 어떤 보살이 어린이를 안고 있지 않은가? 내가 무언가 헛것을 보았나,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성모님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인상을 풍기는지 나는 모르겠다. 성모님은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아들 예수를 시켜, 잔치의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보살도 고통받는 사람의 호소에 귀를 막는 법이 없다. 백석을 사랑한 여인 자야가 말년에 기증하여 절이 된 길상사에 가보면,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가 조각한 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다. 언뜻 보면 성모님 모습이다. 나는 종교의 깊은 본질에 들어가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가 우비를 입을 때 도와준 장대 같은 친구가 지나간다. 나는 소리를 쳐서 나처럼 사진을 찍으라고 권했으나, 그는 멀건이 쳐다보다가, 웬 미친놈 있냐는 표정으로 그냥 가버린다.

 

비속을 3시간을 걸으니, 양말도 젖고, 다리도 아파온다. 천막이 있는 길가 노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려니 순례자들이 묵묵히 속속 지나간다. 나는 야비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 앞에 어떤 부부가 우비 속에 큰 배낭을 들러메고 천천히 걸어간다. 그 뒤를 쫓아가기로 했다. 그들의 말소리가 들릴 듯 말듯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갔다. 골프칠 때는 누가 부부이고 연인인지를 금방 안다. 소 닭 보듯이 하는 사람은 부부이고, 연신 웃으며 서로 말하는 사람은 연인이다. 두 사람은 분명 부부인 것 같은 데, 계속 말을 이어가며, 일정한 보폭과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힘이 덜 들었다. 중학교 때 였을 것이다.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육상경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운동장을 오래 달리는 경기였는데, 키 큰 선수가 제일 앞에서 뛰고, 그 뒤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키가 적은 선수가 따라간다. 그러더니 막판 결승으로 향하는 코너를 돌더니, 뒤의 선수가 힘을 내어 뛰어, 앞 선수를 제치고 일등으로 골인했다. 나는 스탠드에서 일어나 소리치며 분개했다. 정정당당한 스포츠에서 저런 야비한 수단을 쓰다니, 이건 무효다. 앞의 선수가 바람도 막고 온 경기를 이끌었는데, 막판 몇 십 미터를 남겨두고 이런 새치기를 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미워했던 행동을 오늘 내가 하고 말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산속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우리나라 수안보 같다. 비가 개니 청명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조그만 마을에 웬 성당은 그리 많은지, 아예 중앙에 있는 큰 성당은 호스텔로 개조하여 사용되고 있었다. 내일은 1330m 산을 오르는 구간이라고 하니, 밤새도록 고민 좀 해봐야겠다. (202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