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인문학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3(폰페라다)
o 인문학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3(폰페라다)
구녕 이효범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안 맞는 곳이 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가 그랬다. 우선 너무 추웠다. 여기 5월의 스페인 날씨가 본래 그런지 아니면 이상 기후 때문인지, 순례자나 여기 사람들도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강풍까지 불었다. 숙소도 편안하지 못했다. 열쇠로 문을 타지 못해 결국 안내자를 불러야 했고, 어렵게 배우기는 했지만 혹시 안에서 잠그고 열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 몰라, 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가슴을 조이며, 춥게 자야 했다.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젊었을 때 가족들과 소나타를 타고, 뉴저지에서 텍사스를 거쳐 로스앤젤레스까지 횡단한 적이 있는데, 미시시피주를 지날 때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곳도 가난한 농촌지역이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인 것은,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생선 그림이 있어 뭔지도 모르고 주문했다. 조개와 게가 들어간 국물이 우리나라 짬뽕 국물처럼 매워서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앞마을에서 점심으로 먹은 닭튀김도 고추로 뒤범벅되었고, 폰페라다에서 먹은 찐 감자에는 아예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스페인 와서 음식에 고춧가루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힘겹게 아스토르가(Astorga)에 도착했다. 아스토르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250km 지점에 있는 도시로, 2000년 전 로마인에 의해 지어진 유서 깊은 도시이다. 로마 시대의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고, 성곽은 그 후에 쌓았는지 일부가 높게 남아 있다. 예술관 뒤편, 구도심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니 전방 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멀리 내려다보는 풍경이 잔잔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네오고딕 양식의 주교관 건물이 있다고 해서 살펴보았는데, 예술품이 다 그렇듯이 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 품질이 모두 균등한 것은 아니다. 절정에 만들어지는 걸작이 따로 있다. 독일 순례자가 가리키는, 우리가 가려는 쪽을 보니, 높은 산들이 검은 구름 속에 가리어져 있고, 그 왼쪽에는 설산도 보인다. 고통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젊었을 때 이야기이지, 나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순례를 시작하던 날 피레네를 넘던 그 고통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또 이제는 그럴 자신도 없다. 이곳 스페인에 와서 자신 있게 습득한 중요한 기술은, 버스를 혼자서도 얼마든지 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버스에서 산을 넘으며 풍경을 내다보니, 날이 따뜻한 계절에, 여유 있게 며칠을, 뜻맞는 사람과 걷는다면, 참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폰페라다는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성이 있는 도시이다. 고성은 웅장했다. 고성에 오르니 전망이 일품이었다. 여기는 한때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는데 폐광이 되면서, 관광업과 포도주 산업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되어 있다. 숙소에 이르니 한 외국 할머니가 “지난번에 우리 레온에서 만났지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놈의 인기란 세계 어딜 가도 통하는가 보다. 그러나 할머니보다 금발의 젊은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2024년 5월 4일)
'이효범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5(오 세브레이로) (0) | 2024.05.10 |
---|---|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4(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0) | 2024.05.09 |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0) | 2024.05.06 |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1(레온) (0) | 2024.05.05 |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0(빌바오(2)) (1) | 2024.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