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2(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구녕 이효범
오늘은 32km를 걸으려고 한다. 날이 밝기 전에 호텔을 떠났다. 이미 길을 나선 순례자들이 있어 그들을 따라간다. 한참을 가는데 성당에 불이 환하다. 입구에 가까이 가니 성당이 아니라 별 다섯 개짜리 최고급 호텔이다. 무슨 호텔이 이렇게 성당처럼 멋진 외벽을 했나 감탄하며 그냥 들어갔다. 어제 잔 호텔에서 깜박 잊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레온에서 한 군데는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미모의 안내인이 웃으면 찍어준다.
도시를 빠져나오니 꽤 긴 공단으로 이어진다. 공장 길은 순례자에게는 피하고 싶은 길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건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돈을 어떻게 버나. 그러니 기업인들을 너무 욕할 것이 아니다. 돈이 들어오니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놀랐던 부르고스의 대성당이나 레온의 대성당도 이 지역이 가장 번성할 때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반만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요행히 비전을 가진 정치지도자와 국직한 기업인들과 잘 교육받은 우리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다. 세계사에서 경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간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돈이 들어오니 길도 내고, 주택들도 좋아지고, 성당이나 교회나 사찰들도 웅장해진다. 여기 스페인을 보라. 자동차나 휴대폰 등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변변한 기업들이 하나도 없다. 저 광활한 땅에 밀만 심어서 무슨 돈이 되는가? 그러니 집이나 땅을 판다는 광고만 순례길 내내 어지럽게 보게 되고,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의 영광 뒤의 슬픈 그늘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국운이 계속 상승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개인도 돈이 들어오면 사는 집부터 손을 본다. 도시는 고층빌딩들이 올라가고, 나라는 선진국들처럼 주변이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던 사람은 그 번 돈으로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사 모았다. 예술이 발전할 것이다. 종교시설도 사치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부인가? 우리의 문화가 농축된 상징적인 것은 무엇일까? 너나 나나 한옥촌만 만들어 대면 그것이 대수인가? 나라는 나라대로 고민하겠지만, 그러면 너, 대한민국 번영의 시대를 살아가는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네가 세르반테스처럼 영원한 작품을 썼는가, 아니면 칸트처럼 위대한 철학을 세웠는가? 그래 과거는 그렇다고 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공단과,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 도로 옆을 걷는, 힘든 2시간의 여정이 끝나고 조용한 전원으로 들어섰다. 흙길은 평탄하고, 어제 온 비로 걷기에 좋을 정도로 촉촉이 젖어있다. 광활한 농촌 풍경이 계속 이어지니 또 다른 생각이 들어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불교에 심취하였으나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불교와 소원해졌다. 그런데 명색이 불교학생회 회장 출신인데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다. 간간이 혼자 있을 때는 참선을 흉내 낸다. 지금은 주로 ‘이뭐꼬?’를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어떤 놈인가?’라는 뜻이다. 진도는 별로지만, 효과를 볼 때도 있다. 주로 치과에서이다. 이번에 세 번째 임플란트를 해박았는데, 치과에 가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마취를 한다고는 하지만 내 몸을 마치 망가진 자동차 고치듯이 마구 다룬다. 그럴 때 나는 화두를 든다. 아프면 이빨이 아프지 내 정신이 아픈가? 몸하고 나는 다르니, 몸이 아픈 것은 미안하지만 거기서 끝내도록 하게,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하겠네, 이워꼬. 그러면 정말로 마음은 편안해지고, 고통의 시간도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이 혼자만의 지루한 시간에 모처럼 이뭐꼬에 빠지기도 했다. 낯선 공간에 와서 혼자 외로이 긴 시간을 걸으며 이뭐꼬에 빠지니, 어떤 때는 내가 길옆에 핀 작은 꽃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심지어 돌맹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심이 되었다. 뭘 먹을래 이뭐꼬.
오후는 그야말로 날씨와의 싸움이었다. 쌀쌀한 강풍이 몰아친다. 모자를 쓸 수가 없다. 그러다가 길옆에 쓰러진 나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을 만났다. 다행히 길을 걷는 순례자가 연락을 하여 10분 만에 엠블런스가 왔다. 노인은 부부가 같이 왔는데, 부인은 앞의 숙소에 먼저 가 있고 혼자 걷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본인만 휴대폰이 있고 부인은 없어 연락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오랜 노출에 머리가 얼얼한 한 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낭만이고, 생각이고 할 겨를도 없이, 나의 사랑하는 몸이 쓸어져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10시간을 걸었다. 이 길은 사랑하는 사람하고 걸었어야 할 길이다.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이뭐꼬. 이뭐꼬는 어디 갔는지 대답이 없다. (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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