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9(빌바오(1))

이효범 2024. 5. 2. 02:40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9(빌바오(1))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9(빌바오(1))

 

구녕 이효범

 

하느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루를 쉰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하루를 더 힘들게 걷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편안할 줄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순례의 길을 벗어난 것 같아, 마음은 무겁고 불편했다. 60명이 타는 고속버스로, 2시간에 걸려, 피레네산맥을 넘어, 부르고스에서 빌바오에 왔다. 예전부터 한번 오고 싶은 도시였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도 보고 싶었지만, 사실은 여기가 바스크 민족이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심장부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스페인 정부와 바스크의 과격한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 ETA(Euskadi Ta Askatasuna))’과 격돌하여, 1968년 첫 암살 테러를 시작으로, 2018년까지 총 850여 명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빌바오는 평온하고 활기가 넘쳤다. 대학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구겐하임 미술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조금 시내 쪽으로 내려가니 놀랍게도 대학이 나왔다. 습관적으로 들어갔다. 대학 입구, 건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한편의 대학생들이 포커 놀이를 하고, 햇볕이 비추는 다른 쪽에서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궁금하여 대학 건물 내로 들어가다가, , 내가 은퇴하였지, 하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로 그 옆에 미술관 같은 산 마메스 축구 경기장이 나왔다. 여기가 바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프로축구단 아틀레틱 클루브(아틀레틱 빌바오로 더 잘 알려짐)의 홈구장이다. 이 구단은 아직도 바스크의 순수한 혈통주의를 고집하여, 마스크 민족 선수들만 기용한다. 그러나 라리가에서 전력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한다. 조금 더 강 쪽으로 내려오니 큰길 사거리에 어떤 동상이 서 있는데, 너무 높아 솟아서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무슨 동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유를 갈구하는 이 민족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네비온강(Nervion River)이 나왔다. 수량이 많은, 일정한 넓은 폭을 가진 수로 같았다. 유람선이 떠다닌다. 이 강이 도시를 둘로 가르고 있다. 강 주위가 너무 아름답고 건물들도 고색창연하였다. 강 따라 오른쪽으로 가라는 대학생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왼쪽으로 미련하게 한 시간을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오늘도 많이 걸었다. 그러나 바다로 향하는 그 길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강을 따라 비싼 아파트들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바다 쪽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 나왔다. 반가웠다. 대단하고 독특한 건물이다. 그런데 나는 어제 부르고스에서 너무나 위대한 성당을 보아서인지 생각보다 감동이 그리 크지 않았다. 두 곳은 인간의 다른 가치를 대표한다. 하나는 성스러움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그리고 시대도 다르고 시대정신도 다르다. 그러나 지상에서 이 모든 걸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알다가도 알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인간의 정신이다. (2024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