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9(멜리데)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9(멜리데)
구녕 이효범
오늘은 짧게 걷기로 한다. 이곳은 산을 낀 스페인의 전형적인 시골 지역이어서, 한 25km 정도에 순례자들이 묵을 적당한 마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제 조금 무리해서, 거리를 줄인 것이다. 떠나기 전에 거울을 보니 웬 상노인이 얼굴이 굳어있다. 염색이 지워져 흰머리가 가득하다.
8시에 호텔을 나서니 조금 늦어서인지 단체 순례자들이 여러 팀이다. 학생들은 동서고금이 똑같다. 말 같이 가는 놈, 황소처럼 길을 쓸고 가는 놈, 이것저것 참견하며 가는 놈, 어떤 여자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멋을 낸다고 꾸몄는데, 애교가 있다. 내 앞에 무리에서 떨어져 두 여자아이가 간다. 한 아이는 무거운 배낭을 맺는데, 다른 아이는 조그만 손가방 하나 딸랑 들고, 가끔 발래하는 동작을 취한다. 금발이다. 아침 햇살에 금가루가 쏟아지는 것 같다. 금발이여, 왜 너는 50대 매혹적인 중년으로 혼자 여기를 지나가지 않고, 앳된 소녀로 단체에 섞여서 지나가는가? 아직도 내 배낭 저 밑에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일주일 호화생활하고도 남을 돈뭉치가, 손도 대지 않은 채 잠자고 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삐 매인 소처럼 순례길을 갈 수밖에 없다.
50km, 이제 순례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순례를 마치면 나는 무엇을 할까? 물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그래 나의 영혼을 키웠던 계룡산 밑으로 들어가자. 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갑사에서 하는 불교 수련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하루는 등산하는 날을 잡아, 삼불봉을 지나 연천봉을 지나 신원사로 내려왔다. 신원사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은 이미 많이 와본 동네처럼 너무나 친근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동네에 와서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고 아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무슨 인연인지 나도 모르게 공주사대에 전임교수로 오게 되었다. 공주에 온 얼마 후에 신원사 생각이 나서 그 주변에 땅을 300평 샀다. 수도하는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꽃나무도 심고 과일나무도 심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가까이서 늘 돌보지 않으면 결실이 나지 않는다. 결정적인 사건은 늦둥이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른 봄에 밭에 왔는데, 잡풀이 너무 우거졌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뛰어 놓고 불을 질렀다. 마른 풀에 불이 붙으니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불은 뒷산으로 옮겨가려고 했다. 죽는 등 사는 등 불을 끄느라고 소중한 아들을 잃을 뻔했다. 마침 혼례에 다녀오던 동네 주민들이 합심하였기 때문에 간신히 불을 끌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밭에 가지 않았다.
시골 땅은 잘 알아보고 사야 한다. 그때는 시골 동네 할아버지가 걱정하지 말라고, 이곳은 아무 곳에나 집을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경치만 보고, 당시 시세의 두 배를 주고 샀다. 그런데 그곳은 옆에 있는 경천저수지로 흘러가는 도랑이 있어서 그런지, 수자원 보호지역으로 묶여서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이다. 그래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침 일전에 명리학을 공부한 제자가, “선생님, 이 땅으로 돌아오셔요. 계룡산 신령님이 좋아하십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자비로운 공주시여, 이 은자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는 아침에는 명상과 글을 쓰고, 점심에는 여기 스페인의 시에스타처럼 늘어지게 자고, 늦은 오후에는 주변의 돌로 조그만 은신처를 짓겠다. 공주에 또 하나의 보석을 박아놓겠다. (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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