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21-5. 저절로 자라나는 한울님

이효범 2022. 5. 20. 06:39

21-5. 저절로 자라나는 한울님

 

동학의 수행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주문을 외우고, 심고心告하고, 경전을 음미하면 된다. 주문은 마음을 가다듬고 소리 내어 되풀이해서 읽는 것을 위주로 하며, 심고는 밥을 먹을 때나 출입할 때에 고하는 것이며, 경전의 음미는 동학의 가르침을 항상 되새기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동학은 영을 구하거나,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개조될 것을 요구한다.

수운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과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천주주문을 외우면 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21자 시천주 주문은 지극한 기운이 지금 여기에 이르러 크게 강림하시기를 빕니다. 한울님을 모시면 그 (무궁무진한) 조화가 일어나, 이를 영원토록 잊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알려지게 됩니다(至氣今至 願爲大降 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이다. 여기서 금지今至는 지금 입도入道하여 지극한 기운에 접하고 있음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願爲는 바란다는 뜻이요, 대강大降은 자기에 화합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수운은 이런 주문 수련을 통해서 일반 민중들에게는 멀기만 했던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불성, 여래장, , , 본연지성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제시했다. 이것은 수운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에 바탕한 것이다.

또한 수운은 덕에 합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성과 경과 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그는 성을 제일 강조하였다.

 

가 이루어지고 덕이 세워지는 것은 성에 있고 사람에 있다(道成德立 在誠在人).

 

수운이 말하는 성은 마음으로 굳게 믿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우리 도는 마음으로 굳게 믿는 것을 성이라고 한다(大抵此道 心信爲道).

 

인간의 본질이 비록 시천주라 하지만, 사람은 생활 속의 작은 이해타산으로 주체적인 믿음을 상실하고 자기 자만과 자기기만 속에 본래적 자아를 상실하게 되어 하늘의 덕에 부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시천주임을 자각하고 굳게 믿음으로써 정성을 다할 것이며, 정성이 지극하면 저절로 도를 이루게 되고 천덕天德에 합하여, 한울 본성을 갖는 본래적 자아에 귀일하게 된다.

 

정성이 이루어지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잃지 않았나 헤아려 보라. 이것은 스스로 자기의 자만을 아는 것이다.

 

수운에 따르면 경, 한울님을 숭모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을 잠시도 늦추지 않고 타락된 현상에 눈을 돌리지 않으며 마음을 정하여 천덕에 부합하려는 신념적 태도이다.

 

공경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잠깐이라도 흠모하고 숭앙함을 늦추지 말며, 내 마음을 자나 깨나 두려워하라.

 

이런 경은 그 대상에 따라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로 나타난다. 수운의 제자 해월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우주 만물에도 한울이 깃들어 있다는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을 주장한다. 그는 물건이나 동물을 상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동학의 도에 어긋나는가를 이천상천以天傷天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사용해 밝히고 있다. 즉 한울로써 한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물이나 동물을 다치게 하는 것은 바로 한울을 다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물을 그냥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효성을 다하듯 만물을 극진한 공경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과 땅은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하니 부모와 같은 존재(천지부모일체설)이고, 그 사이에 있는 해와 달은 비추어 주어서 고맙고, 만물이 서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모두 고맙기 때문이다.

끝으로 수운은 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자信字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다. 말 가운데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어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되,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신이다.

 

수운은 시천주라는 자각과 확고부동한 신념을 강조하고, 이와 같은 믿음으로 닦아야 마침내 성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상의 성신은 수도의 구체적인 방법인 수심정기守心正氣로 집약될 수 있다. 수운은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라고 하여 이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심이란 마음을 지킨다는 뜻으로 시천주로서의 확신과 온갖 의혹을 떨쳐 버리는 똑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 정기는 기운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지닌 똑바른 마음가짐을 실천에 옮기는 확고한 행동을 뜻한다. 그러므로 수심정기는 인격 수양의 가장 중심적인 방법이 된다.

 

, , 신은 도를 세우는 본체가 되고, 수심정기는 도를 닦는 요체가 되며, 포덕광제布德廣濟는 도를 행하는 쓰임세가 된다.

 

수운의 뒤를 잇는 해월은 양천주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함에 있어서, 무엇 무엇을 하면 한울님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즉 너무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 스스로를 추켜올리고 뻐기는 것, 사치하는 마음 등은 한울님이 자라나는 것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한울님을 기르기 위하여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기 보다는, 다만 나쁜 기운이나 삿된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면 원래부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한울님이 저절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해월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령함을 갖춘 것이 인간인데 그 인간은 매끼 밥으로 그 소중한 생명을 유지하니, 한울님의 신령함이 실현되는 데에 있어 밥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매끼 먹는 밥이 단지 육체적인 영양 보충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한울님의 생명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사란 큰 감사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 종교적인 행사가 된다.

또한 해월은 대인접물對人接物을 강조한다. 여기서 대인이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해악을 가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진실과 인의仁義 같은 덕으로 대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접물이란 물건을 대할 때도 한울님이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공경스러움을 놓지 말라는 의미이다. 물건을 공경하는 이유는 실천적으로 보면 절약 근검 정신이 극치에 이르면 자연히 물건을 공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보면 천지에 가득 찬 것이 한울님이니 당연히 그 한울님은 모든 사물에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따라서 모든 사물도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경물敬物 사상은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함께 후에 천도교의 삼경三敬 사상으로 집약된다.

해월의 뒤를 이은 의암은 제1차 세계대전과 일제 식민 통치하에 있는 민족을 해방하기 위하여, 동학의 정치적 활동을 포기하고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조한다. 그러면서 천도교라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신환성以身換性이라는 새로운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일거수일투족이 본래의 성령임을 자각하고, 육신의 안락을 위해 살지 말고 성령을 주체로 해서 살라는 것이다.

 

더 읽을거리

 

박세명, ?동학사상과 천도교?, 동학사, 1969.

오지영, ?동학사?, 아세아문화사, 1983.

오문환편저, ?수운최제우?, 예문서원, 2005.

유병덕, ?동학천도교?, 교문사, 1987.

이돈화, ?신인철학?, 천도교중앙총부, 1969.

최동희, ?동학의 사상과 운동?, 성균관대출판사, 1980.

최종성, ?동학의 테오프락시?, 민속원, 2009.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2, 사계절출판사, 1998.

 

 

 

o 지금까지 21가지 꼭지로 다양하게 인간론을 살펴보았습니다. 난해하고 미숙한 글로 여러분의 스마트한 머리를 너무 괴롭혀온 점 사과드립니다. 저는 이제 조용히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을 보충하고 다듬을 생각입니다. 그것이 혹시 책으로 출판될 수 있을지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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