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20-6. 수기치인

이효범 2022. 5. 14. 07:24

20-6. 수기치인

 

율곡이 성인되기 위한 방법을 본격적으로 서술한 저서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가 있다. ?성학집요?는 제왕에게 제왕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성인이 되어,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 수기修己, 정가正家, 위정爲政이라는 절목이 나온다. 이것은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본원유학에서 말하는 수기修己, 안인安人(治人) 또는 내성內聖, 외왕外王의 사유를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율곡도 성현의 학문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두 가지에 불과하다고 하여, 자신의 개인적 수양과 함께 남을 다스리는 것을 학문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立志에 있다. 율곡은 지기지사氣之師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만일 지가 한결같으면 기에 동함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뜻이 서지 않는 이유는 불신不信, 불지不智, 부용不勇의 삼불三不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삼불의 병통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성인의 경지로 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하여 성인에의 뜻을 확고히 세운 후, 명선明善으러 알고 성신誠身으로 행하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율곡은 이를 위해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의 세 가지를 거론한다.

율곡은 경을 위학爲學의 시며 동시에 위학의 종이라고 하여, 경이 학문의 시종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인이 되는 도는 도리를 수행자의 정신 속으로 흡입하는 것이다.

 

도리를 수행자가 흡입하고 수렵한다는 것을 기술적인 말로 바꿔 설명하면, 그것은 존재론적 도리를 수행자의 정신세계로 잠기게 하는 관여를 의미한다. 존재론적 도리를 수행자의 자아에 잠기게 한다는 것은 마치 화선지 위에 붓글씨를 쓰거나 또는 묵화를 그릴 때 먹이 종이 속으로 들어가듯이, 존재론적 도리가 주체 속으로 함영涵泳이나 함양涵養되는 현상을 말한다.

 

함영은 경과 같은 것이다. 함영은 조급하게 서둘러서 사물의 진리를 어떤 관념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도리가 내 마음 속에 고요히 잠기도록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여 흩어 놓지 않는 주일무적主一無敵의 상태, 즉 허심虛心의 상태를 말한다.

율곡은 함영의 교육을 위한 지침으로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구용 구사九容九思를 몸에 체득할 것을 요구한다. 구용은 발, , 입의 거동을 정중하게 하고 불쾌감을 주는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되고 머리 거동도 똑바로 하고 숨도 고르게 쉬어야 하고, 서 있는 자세도 위엄 있고 얼굴 인상도 단아해야 함을 말한다. 구사는 보는 데서 바로 볼 것을 생각하고(視思明), 듣는데서 총명을 생각하고(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고(色思溫),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貌思恭), 말은 충성되게 할 것을 생각하고(言思忠), 의심이 날 때에는 묻기를 생각하고(疑思問), 분할 때에는 환난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忿思難), 이득을 보았을 때는 의를 생각해야 한다(見得思義)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경의 자세는 궁리의 근본이 된다고 하여 율곡은 경과 궁리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궁리의 근본이 되는 경의 자세가 갖추어지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앎을 극진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율곡은 궁리의 방법과 궁리의 요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부지런히 공을 쌓아 나갈 것을 당부한다. 또한 율곡은 거경, 궁리와 함께 역행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역행의 근본이 되는 것이 성실誠實이다. 이것은 입지立志, 거경, 궁리에 모두 관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실리實理와 인간의 실심實心을 일관한 것이다.

율곡은 수기의 구체적 방법으로 거경, 궁리, 역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 이외에 수기하기 위하여 기질의 변화나 교정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율곡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성인이다. 성인이 아닌 사람도 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이 아닌 사람은 모두 기질氣質이 편벽偏僻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선 이 편벽된 기질을 바로잡아야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학문을 성실하게 하였다면 반드시 편벽된 기질을 고쳐서 본연의 성으로 회복하여야 한다.” 율곡은 그 편벽된 기질을 고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사람의 기질은 같지 않으므로(不同) 그것을 고치는 데는 각각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은 서로 가깝고 습은 서로 멀다는 말을, 주자가 기질의 성은 그 바탕의 선악善惡이 부동不同하다. 그러나 그 처음을 말하면 모두 심히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다만 선한 습관을 키우면 선하게 되고, 악한 습관을 키우면 악하게 되어서 비로소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라고 해석했는데, 그것을 해석하여 결론한 것이다. 이것은 기질의 바탕은 부동不同한 것이지만 그 처음을 말하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습관을 바로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둘째, 율곡은 기질 교정의 방법으로 극기克己를 말하고 있다. 이 말도 역시 공자의 극기복례예위인克己復禮禮爲仁, 주자가 해석한 인이란 본심이 은전隱全한 덕이다. 은 승이다. 란 자신의 사욕私慾이다. 이란 반이다. 예는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다. 위인爲仁이라는 것은 그 심의 덕을 은전隱全하게 하기 위함이다. 대개 심의 전덕全德은 천리가 아님이 없으나 또한 인욕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인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야 일이 천리에 맞게 되며 본심의 덕이 모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극기의 뜻을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율곡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으로 공자가 말한 절사絶四를 든다.

절사를 정자程子시청언동視聽言動 사자四者는 몸의 용이다. 으로부터 연유綠由하여 밖에 응하는 것이니 밖의 것을 제어하는 것은 그 중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 후대에 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가슴에 깊이 새겨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한다. 율곡은 이런 정자의 시의 감에 대한 주자朱子의 말을 인용하여, “이 장의 문답은 곧 심법心法의 전수傳授하는 데 절요切要한 말이므로, 지명至明하지 않고서는 그 기미幾微를 살필 수 없으며, 지건至健하지 않고서는 그 결단에 이를 수 없다. 정자의 감이 발명發明 친절하니 학자는 더욱 심완深玩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율곡 스스로도 이에 주를 달아, 극기는 절기切己의 공부이며, 변화기질變化氣質의 요법要法이기 때문에, 정자의 말이 이와 같다고 하여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극기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산의 상을 보고 분노를 징계하고, 못의 상을 보고 욕심을 막아낸다. 그러므로 욕심을 막기를 구덩이를 메우듯이 하고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산을 깎듯 한다라는 말을 주자의 인용하여, 사사로움 가운데 이기기 어려운 것이 분노와 욕심에 있음을 말하는데, 특히 분노와 욕심을 이겨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셋째, 율곡은 기질 교정의 공은 면강勉强에 있다고 말한다. 율곡은 중용中庸박학지博學之 심문지審問之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辨之 독행지篤行之의 예를 들고, 정자의 이 다섯 가지에서 한 가지라도 그만두면 학문이 아니다라는 말로써 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율곡은 학문이란 곧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주자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배우지 않으면 않았지 이왕 배울 바에는 능돈能敦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말아야 하며, 묻지 않으면 않았지 이왕 물은 바에는 알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말아야 하며, 생각하지 않으면 않았지 이왕 생각할 바에는 터득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말아야 하며, 변별辨別하지 않으면 않았지 이왕 변별할 바에는 분명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 번으로 능숙하다면 나는 그것을 백 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으로 그것이 능숙하다면 나는 천 번을 할 것이다라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학문은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할 바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므로, 항상 남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율곡은 이와 같은 성현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여 기질 교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일기一氣의 근원根源은 심연청허甚然淸虛하여, 오직 그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한 것이 혹시 상승하기도 하고 혹시 하강하기도 하면서 어지럽게 날아다니다가 합하여 질을 이루어서, 드디어 고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편색偏塞하게 되면 그 이상 변화시킬 방법이 없지만, 오직 사람은 비록 청탁濁淸과 수박粹駁의 차등이 있더라도, 방촌方寸()이 허명虛明하여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율곡에 따르면 기질의 변화와 교정은 신체의 단련 이상으로, 편벽되고 악한 성품이 원만하게 되는 것과 선량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한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율곡은 기질을 교정시키기 위하여 입지, 수렴收斂, 궁리, 성실의 실천을 수기의 요목으로 지시한다. 그리고 노력(勉强)을 다해 극기할 것을 역설한다. “기질 교정의 법은 극기에 있고, 그 공은 면강에 있다.”

이와 같이 수기에 의하여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인격은 사회화社會化되어야 한다. 율곡은 인격의 사회화를 위한 첫 단계로서 정가正家를 말한다. 정가의 도는 윤리를 바르게 하고 인의仁義를 돈독케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효이고, 그 주가 되는 것은 근엄이라고 율곡은 지적한다. 특히 임금의 가장 큰 미덕으로 절검節儉을 표출하며, 이는 임금이 본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가가 이루어지면 위정爲政으로 나아가게 된다. 율곡은 국가란 가정을 미루어 나간 것이라고 하여, 정가가 수기를 바탕으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위정은 정가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정치의 근본은 임금이 덕을 닦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임금의 직분이 백성들의 부모가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인을 행하는 이가 적으므로, 그 마음가짐을 경에 두어야 한다. 또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으로 성 강조한다. 그리하여 율곡은 위정에 있어서 중요한 덕으로 성과 경을 거론한다.

율곡의 정치적 이상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바는 대동 세계大同世界이다. 대동 세계는 율곡이 지향하고 있는 바의 성인이 다스리는 세계로, 대도大道가 행해져서 천하의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되는 이상적 세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세계는 율곡 혼자만의 이상 적인 세계가 아니라, 유학자들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더 읽을거리

 

송석구, ?율곡의 철학사상연구?, 형설출판사, 1987.

이병도, ?율곡의 생애와 사상?, 서문당, 1973.

채무송, ?퇴계 율곡철학의 비교연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5.

최영진외, 한국철학사, 새문사, 2009.

한국철학회 편, ?한국철학연구?중권, 동명사, 1978.

황의동, ?율곡철학연구?, 경문사, 1987.

▪―――, ?율곡학의 선구와 후예?, 예문서원, 1999.

황준연, ?율곡 철학의 이해?, 서광사,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율곡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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