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20-4. 인심도심

이효범 2022. 5. 12. 06:12

20-4. 인심도심

 

율곡이 말하는 인심도심은 사단칠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의(의지)까지 포함한다. 원래 인심도심이라는 말은 서경[대우모편]에 나온다. 순이 우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면서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성을 다하고 하나에 집중해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다.”라는 가르침을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도심과 인심을 뚜렷이 구분하여, 오직 도심으로 중심을 잡고 성실하게 행하여야, 사물에 가장 합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주자가 중용의 머리글에서 분석하고 있다. “마음의 허령虛靈과 지각은 한가지이지만, 인심과 도심의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원래 타고날 때 받은 천성의 올바름에서 근원하기도 하므로, 그것을 지각하는 것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심은 위태하여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보기가 어렵다.”

이점을 율곡은 중요시한다. 그에 따르면 도심은 도의를 행하기 위해 발용한 마음으로, 예를 들어 어버이에 효도하고자 하고 임금에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인심은 신체상의 욕구에서 발용한 마음으로,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입고 싶은 마음이다. 도심은 도의로 인해 감발된 마음으로 순수한 천리의 소산이므로 순선하다. 인심은 형기로 감발된 마음으로 천리의 면과 인욕의 면이 함께 있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심도심은 사단칠정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이 차이를 율곡은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1) 하나의 마음에서 인심과 도심의 구별이 생기는 것은, 전자가 형기形氣의 성격을 지니는 반면, 후자는 성명性命에서 바로 직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심과 도심은 서로 그 본질이 다르므로 서로 겸할 수 없다. 즉 도심을 가지면 인심이 아니고, 인심을 가지면 도심이 숨어 버린다. 그리고 인심을 처음에 가졌다가 도심을 갖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나 사단칠정에서는 칠정이 사단을 겸할 수 있다.

2) 인심이 도심이 될 수도 있고 도심이 인심이 될 수도 있기에, 인심과 도심은 정과 의를 겸하여 말한 것이지, 사단과 칠정처럼 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즉 사단칠정은 외부의 사상事象에 의해 지각 작용을 받아 발하여 나온 그대로요, 처럼 헤아리고 비교해 보는 것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3) 양변兩邊으로 말한다면 인심도심을 쫓아야 하나, 선일변善一邊 혹은 선악겸善惡兼을 말한다면 사단칠정이다.

4) 사단은 오로지 도심만을 말한 것이고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해서 말한 것이다.

5) 도심은 칠정 가운데의 선일변善一邊을 말하고, 인심은 칠정 가운데 선악을 합한 것이다.

6) 인심과 도심에는 주리主理니 주기主氣니 하는 말을 붙일 수 있지만, 사단과 칠정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율곡은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이 그 의미와 요지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그의 지우인 우계牛溪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여기서 인심을 처음에 가졌다가 도심을 갖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말의 의미는,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이 성명性命의 바른 데서 바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혹시 순하게 선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여기에 사의私意가 섞이게 된다면, 이는 처음에 도심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인심으로 마치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이 처음은 도심이었다가 나중에 인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형기形氣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바른 이치(정리正理)에 거스르지 않으면, 진실로 도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며, 혹시 정리正理에 거슬렸으나 정리에 거슬린 것이 좋지 않음을 알고 제복制伏하여 그 욕을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처음에는 인심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 도심이 되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도심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존양存養하여 확충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인심으로 바꿔질 수 있으며, 인심으로 시작했어도 절제節制하면 끝에는 도심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본 입장과 함께 율곡이 강조하는 것은 인심도심을 정과 의를 겸하여 말하는 데 있다. 인심도심과 사단칠정을 비교한 율곡에 따르면, 마음이 발하는 것이 정리正理에서 직출直出하여 기가 작용(용사用事)하지 않으면 이것이 도심이다. 이것은 칠정 가운데 선한 일변一邊이다. 그러나 발할 즈음에 기가 이미 용사하면 이것이 인심으로, 이것은 칠정에서의 선악을 합한 것이다. 만약 그 기가 용사하는 것을 알고 정밀하게 살펴서 바른 이치로 쫓아간다면, 인심은 도심에게 명령을 들은 것이다. 반면 정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그대로 그 향하는 대로 놓아두게 된다면, 정이 승하고 욕이 성하게 되어 인심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도심은 더욱 은밀하게 된다. 이때 정밀하게 살피는 것과 살피지 못하는 것이 의가 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닦는 데는 성의誠意보다 먼저 할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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