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20-2. 이통기국

이효범 2022. 5. 10. 06:39

20-2. 이통기국

 

율곡의 이기관에서 이통기국理通氣局의 사상은 매우 특이하다. 율곡은 퇴계의 이발설理發說이 옳지 못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제시하였다. 이란 이가 무형성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갖게 되는 이치, 원리, 이념적 성격을 말한다. 또 국이란 기가 유형성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받게 되어 갖게 되는 사실 또는 질료적 성격을 말한다. 결국 이통기국은 존재하는 것들이 갖고 있는 모습, 즉 형상形上과 형하形下가 하나로 묘합된 형상을, 본체()와 유행()의 관점에서 파악한 이론이다. 이것은 그의 우주론과 인성론을 일관一貫하고 있다.

이기설에서 우주론적으로 말해지는 이는, 그것이 개체個體에 들어오면 성즉리性卽理라 하여 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율곡은 성을 이기의 합이라고 말함으로써, 이가 기 가운데 있는 연후에 그것을 성이라고 말한다. “성은 이기의 합이다. 생각컨대 이가 기 가운데 있는 연후에 성이 된다. 만약 형질形質(기의 응취)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마땅히 이라고 말해야지 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는 무형으로서 차이부제差異不齊한 기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승재乘宰하는 것이므로 통하고, 는 유형이므로 차이부제하여 각기 개별적으로 국한국정局限局定됨으로써 국하다고 생각한다. 즉 이는 보편자普遍者로서 모든 개체의 기에 같은 하나로서 통하지만, 기는 개별자個別者로서 모든 각자의 기는 각각 하나로서 국하다는 것이다.

율곡은 이통기국의 비유로서 이기에 관한 노래를 지었다. “물은 방원方圓의 그릇을 좇고, 공기는 대소大小의 병을 따른다.” 여기서 물과 공기는 이를, 그릇과 병은 기를 비유하고 있다. 그릇은 모나고 둥근 다름()이 있을지라도, 그 그릇들 가운데에 들어 있는 물(水性)은 한 가지()이다. 병은 작고 큰 다름()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에 들어 있는 공기는 같은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율곡에 따르면 이통기국은 본체 위에서 말해야 하는데, 또 본체를 떠나서 따로 유행流行(형상)을 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통기국은 본체 위에서부터 설출說出야 하며, 또 본체를 떠나서 따로 유행을 구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성이 물의 성이 아님은 기의 국이요, 사람의 이가 곧 물의 이임은 이의 통이다. 모나고 둥근 기는 같지 않지만 기속의 물은 동일하다. 크고 작은 병은 같지 않지만 병 속의 공기는 동일하다.

 

이에 율곡은 이통과 기국의 관계를 기가 만 가지로 다른 데도 한 근본일 수 있는 것은 이의 통 때문이요, 이가 하나인 데도 만 가지로 다를 수 있는 것은 기의 국 때문이다. 본체의 가운데 유행이 갖추어져 있고, 유행의 가운데 본체가 보존되어 있다고 말한다.

율곡은 나아가 현상계가 길고 짧거나 또는 서로 가지런하지 못하여 들쭉날쭉한 것(참차부제參差不齊) 이의 유행으로 보며, 그것을 기품氣稟의 기국氣局으로 돌린다. 따라서 기품에 청정淸淨과 오예汚穢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에 선악이 있다고 말한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나면서 기를 품수稟受하니, 에 선악이 있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은 사람을 깨우침이 절실하여 가장 분명한 것이다. 그 이른바 이는 기를 타고 유행하는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의 본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본연의 이는 본래 순선純善이지만 기를 타고 유행하매 그 나누어짐이 만수萬殊로 되니, 기품氣禀에 선악이 있다. 그러므로 이에도 선악이 있는 것이다. () 만약 이의 선악이 있음을 가지고 이의 본연이라 하면 또한 안 된다.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4는 가장 마땅히 체구體究해야 한다.

 

이황처럼 주리主理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극존무대極尊無對로 보기 때문에 이는 절대선絶對善이다. 그러나 율곡은 현상계의 참차부제에 따라서 선악의 상대적 세계도 그것이 이의 현현顯現이므로, 유행의 이는 역시 선악이 있다고 본다.

이천伊川과 주자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계승한 율곡은, 그 일의 이와 분수分殊의 이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데 역점을 둔다. 원래 이일분수는 이를 중심으로 존재의 세계를 체와 용의 양면으로 나누어 구별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로 보는 사유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하나이지만 분수라는 기의 다양함 때문에 이도 모두 달라진다. 분수란 기의 부제不齋에 의한 것이지만 기분수氣分殊마다 분수分殊의 이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제각기 명을 받아 형체를 이루지만, 기의 편정偏正에 의해 유와 종의 차이를 보여, 동물과 식물 등의 구별이 나타난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개체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명은 모두 같다.

그리하여 율곡은 통체적統體的인 이와 분수된 곳에 있는 이의 관계를 본체론적으로 구별하여, 전자를 본연지리本然之理라고 한다. 즉 물을 예로 들면 물이 갖고 있는 하향성下向性이 본연의 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물이 격하면 튀어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승기지리乘氣之理이다. 격한다는 것은 기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그 소이는 이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격한 것을 기의 작용일 뿐 이의 소이가 아니라고 해도 잘못이고, 또 이것을 이의 본연本然이라고 해도 잘못이다. 이러한 본연의 이는 본래 하나뿐이므로 편정偏正이나 통색通塞이나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기는 동정動靜이 있어 승강昇降, 비양飛揚하면서 그 작용이 쉼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만물은 편(편중)과 정(바름), (통함)과 색(막힘), (맑음)과 탁(흐림)의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기를 탄 승기지리도 당연이 같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이와 나의 이와 만물의 이가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이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본연지리와 승기지리로 보는 율곡은 불교와 순자筍子와 양자揚子의 견해를 비판한다.

 

석씨釋氏는 이가 하나인 것만 알고 분지수分之殊임을 모르기 때문에 작용을 성이라 하여 함부로 방자했다. 그리고 순자와 양자는 분화의 다른 것만 알고 이가 하나임을 몰랐기 때문에, 성이 악하다느니, 성이 선과 악을 혼합하였다고 했다.

 

또 율곡은 정명도程明道가 이에는 선악이 있다고 한 것은 매우 타당한 견해이지만, 이때의 이는 본연지리가 아니고 승기지리라 하여, 이의 이원적인 구분을 명확히 한다. 즉 선악의 면에서 보면 본연지리는 순선純善이나, 기를 타고 유행流行할 때 만수萬殊로 나누어져, 기품氣稟에 선과 악이 있게 되므로, 이에도 선과 악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기는 청정하여 지귀至貴한 것에서부터 오예汚穢하여 지천至賤한 것까지, 또 지선至善한 것에서부터 지악至惡한 것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율곡은 본연의 이는 순선純善이고 승기의 이는 선과 악이 있다고 주장하여, 가장 문제가 된 인성에서의 선악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거를 제시한다. 이것은 장횡거張橫渠가 인성을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양분한 것에 대한 우주론적이며 형이상학적 근거로서, 종래의 이에는 불선不善이 있고 기에는 선악이 있다는 견해를 좀 더 명료하게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양 견해가 병립됨으로써 율곡은 인성론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일사불란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연의 이는 아무것도 가감할 필요가 없는 본선本善이므로 인위적으로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여 도덕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본선 그대로 자약自若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본연지리와 승기지리에서 보면 그 분수된 바는 있어도 결국 이는 동일한 이이기 때문에, 이는 천지 만물을 통하여 하나로 유통된다. 그러나 이 같은 본체적인 면과 달리 현상적인 면에서 보면 기의 다양성이 제기된다. 즉 천지의 기는 지정至正하고 지통至通하나 만물의 기는 편중되고 막히며, 그중에서 인간만이 정과 통한 것을 받았지만, 그 인간에게도 인간의 정과 통 중에 맑고, 탁하고, 순수하고, 얼룩짐(청탁수박淸濁粹駁)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이는 정조精粗나 본말本末이나 피차彼此가 없이 통하는데, 기가 세밀함()과 엉성함(), 과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는 삼라만상에 통하는데 반해서 기는 국한局限되는 것이다. 기가 이와 같이 본말과 선후가 있는 것은 기에 형술形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본연지리가 있는 것과 같이 기에도 본연의 기가 있다. 이것은 본래 담일청허湛一淸虛하여 조박糟粕, 분괴糞壞의 기가 아닌데, 기의 운동성 속에서 만상의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이 점 때문에 기의 유행에서 본연의 기를 잃게 되면, 현상의 기에는 본연의 기가 없게 된다.

편벽된 것은 그대로 편벽된 기이고, 한 기는 그대로 청한 기가 되며, 조박糟粕은 그대로 조박이지 그것이 청한 기와 섞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이는 본연지리와 승기지리의 묘가 같은 것인데 비해, 기는 본연지기와 현화顯化된 기가 다르니 이것을 기의 국이라 한다. 기의 분화는 장횡거의 정몽正蒙에서는 기분만수氣分萬殊로 나타난다. 장횡거는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밝힌 것에 대해, 율곡은 이것을 이일분수理一分殊와 연결시킨 점이 다르다.

그러므로 본연지리와 승기지리의 관계는 통이 되고, 본연지기와 현화顯化된 기의 관계는 국이 된다. 즉 이통기국理通氣局이 된다. 이통理通이란 형체가 없는 이로 인해 천지 만물이 동일함이고, 기국氣局이란 유형인 기로 인해 천지 만물이 각기 다른 일기一氣인 셈이다. 그리고 기 자체도, 고목과 회사灰死의 기는 생본生本이나 활화活火의 기가 아니지만 고목과 회사의 이는 즉 생본과 활화의 이이다. 기는 이렇게 같은 기 속에서도 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가 기에 섞이지 않고 그대로 이인 것은 이가 통한 것이고, 에 국한 것이 기의 국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이는 곧 물의 이가 되지만, 사람의 성은 곧 물의 성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기는 다른 어느 사물의 기보다 가장 빼어난 것이어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된다. 그리고 인간의 기는 다른 사물의 기보다는 빼어났지만, 기 자체가 경중, 청탁, 수박粹駁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의 기도 천차만별로 일정하지 않고, 그러한 기의 질적 차이로 인하여 어리석고 현명한 지능의 차이가 생겨난다. 이런 율곡의 기발이승설과 이통기국설은 그의 심성론心性論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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