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사단칠정
유학의 인성론人性論에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는 심心, 성性, 정情, 의意이다.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마다 다르다. 율곡의 심성정의에 대한 표현은 다음의 두 글에서 나타난다.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성과 기를 합하여 일신의 주재主宰가 된 것을 심心이라고 한다. 심이 사물에 응하여 밖으로 발하는 것을 정情이라고 한다. 성은 심의 체體이고, 정은 심의 용用이다. 심은 미발未發과 기발己發의 총명總名이므로, 심은 성과 정을 통괄統括하는 것이다.
성은 심의 이理이고 정은 심의 동動이다. 심이 동한 후에 정으로 연 緣하여 계교較計하는 것이 의意가 된다. 만일 심과 성이 둘이라면 도道와 기器가 서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며, 정과 의가 둘이라면 인심人心에도 이본二本이 있을 것이니 어찌 그릇된 이론이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심성정의心性情意는 다만 일로一路로서, 각각 경계가 있음을 안 연후에야 가히 어기어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일로라고 하는가. 심의 미발을 성이라고 하고, 기발을 정이라고 하고, 발한 뒤에 상량商量함을 의意라고 한다. 이것이 일로이다. 어째서 각각 경계가 있다고 하는가. 심의 적연부동寂然不動한 때는 이것이 성의 경계이다. 감이수통感而遂通한 때는 이것이 정의 경계이다. 감한 바로 인해서 주역상량紬繹商量함은 의意의 경계가 되니, 다만 일심으로서 각각 경계가 있는 것이다.
두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하늘이 만물을 화생化生할 때 기로서 형체를 이루고, 이理도 또한 부여하였다. 이때 부여된 이가 성이다.
2) 성과 기를 합하여 일신의 주재가 되는 것이 심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심은 성정의의 주재가 된다.
3) 심은 미발과 기발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성정의를 통괄한다.
4) 성은 심의 이이고, 심의 미발이며, 적연부동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심의 체體가 된다.
5) 정은 심의 동動이고, 심의 기발이며, 감이수통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심의 용用이 된다.
6) 의는 정이 발하여 계교상량計較商量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율곡은 심성정의를 천인일관天人一貫의 입장에서, 천리天理와 인성人性을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심성정의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각각 그의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심정정의는 일로이다. 이러한 심성정의를 율곡은 또한 이기理氣로도 표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은 이이고, 심은 기이고, 정은 이와 기가 동한 것이다. 그리고 심의 본체는 심연허명甚然虛明한 것이다. 그 심이 허령통찰虛靈洞察하여 만리萬理가 갖추었으므로, 탁한 것도 청한 것으로 변하게 할 수 있고, 잡된 것도 순수한 것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성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진다. 옛부터 성性의 선악善惡의 문제와 또 성이 이냐 기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것이 장횡거張橫渠와 정이程伊에 이르러, 천지본연지성天地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둘로 나누어 논해졌다. 주자도 말하듯이 이러한 장․정의 성설性說은 매우 유용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주자가 설명의 편의상 일성一性을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어 설명했기 때문에, 후세에 와서는 그 전체적인 이해에 차질을 초래하였다. 본연지성을 위주로 하는 경향과 기질지성을 위주로 하는 입장으로 갈라진 것이다. 특히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 대두되어 형이상학적 해명이 문제되기 때문에 성론性論은 다시 복잡한 과정을 걷게 되었다.
율곡은 장횡거張橫渠, 정이程伊, 주자朱子의 영향을 받아,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을 겸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지만, 기질지성은 도리어 본연지성을 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성과 이를 구별하고, 성은 단 한 가지라고 강조한다. “성이란 것은 이기가 합한 것이다. 대개 이가 기 가운데 있은 뒤에 성이 되는 것이니 만약 형질形質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이라면 마땅히 이라고 할 것이지, 성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형질 가운데서 단순히 그 이만을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본연지성은 기와 뒤섞일 수 없다. 자사子思와 맹자孟子는 그 본연지성을 말하고 정자程子와 장자張子는 그 기질지성을 말하였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성인데, 주로 하여 말한 바가 다를 뿐이다. 이제 각각 주主한 바에 대한 뜻을 알지 못하고 그만 성性이 둘이라고 한다면 이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이 이미 하나인데 성에 이발기발理發氣發의 구분이 있다고 하면 성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율곡에 의하면 이와 기가 합한 것이 성이다. 이런 성은 형질 가운데서만 파악할 수 있고, 형질을 떠난 것은 이이지 성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본연지성이란 단지 형질 속에서 이만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으로, 기가 배제된 순수한 이를 의미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성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질지성 하나만이 진정한 성이다. 이렇기 때문에 율곡이 볼 때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할 수 없으나,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할 수 있다.
이런 율곡의 심성정의에 대한 논의는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인심도심人心道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본래 ‘사단’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하여 제시한 것이다. 맹자에 의하며 인간은 누구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는 도덕적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않는 마음’인 불인인지심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내용이 바로 사단이다. 이런 사단은 타자의 고통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한다. 이것은 絶對善인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나타난 것이다.
이에 반해 칠정은 『예기』예운편에 나오는 기쁨, 분노, 사랑, 두려움, 슬픔, 싫어함, 욕구(喜怒愛懼哀惡欲)라는 일곱 가지 정감을 말한다.
본래 사단과 칠정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16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에 와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율곡은 사단칠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내가 강릉에 있을 때 기명언奇明彦과 퇴계退溪의 사단칠정을 논한 글을 보니 퇴계는,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명언明彦은 사단칠정이 원래 이정二情이 아니고 칠정七情 중에 이에서 발한 것이 사단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왕복往復한 만여언萬餘言이 마침내 서로 합하지 못하였으니, 나로 말하면 명언의 이론이 나의 뜻과 꼭 맞는다. 대개 성性 중에는 인의예지신이 있고 정情 중에는 희노애락애오욕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 오상五常 밖에 다른 성이 없고 칠정 밖에 다른 정이 없다. 칠정 중에 인욕人欲이 섞이지 않고 수연粹然하게 천리天理에서 나오는 것이 사단이다.
여기서 율곡은 이황의 설에 반대하고 기대승의 입장에 동조하여, 사단칠정이 원래 하나의 정이며 칠정 가운데 사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칠정과 사단의 관계에 대하여, “정은 하나인데 사단으로 말하고 혹은 칠정으로 말한 것은, 오로지 이만을 말할 때와 기를 겸할 때가 다르다” 라고 하여, 사단은 오로지 이만을 말한 것이고 칠정은 이와 기를 겸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율곡에 의하면 사단은 이만을 말한 것이고 칠정은 이기를 겸한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칠정은 사단을 그 가운데 포함하게 되니, 칠정과 사단은 하나의 정일 뿐이다.
이것을 율곡은 ‘사단은 칠정의 온전穩全함만 같지 못하며, 칠정은 사단의 순수純粹함만 같지 못하다’고 표현한다. 정으로서 완전히 구비된 것은 사단보다는 칠정이며, 정으로서 순수한 것은 칠정보다는 사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칠정의 선일변善一邊이며, 칠정은 사단의 총회자總會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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