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성인
인간이 이룰 최상의 경지를 율곡은 성인聖人이라 하였다. 율곡의 이와 같은 생각은 젊은 시절부터 일관된 것이다.
먼저 모름지기 그 뜻을 크게 하여 성인으로서 준칙準則을 삼을 것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마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맨 먼저 뜻부터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도 성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조금이라도 자기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물러서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처음의 글은 율곡이 금강산에서 하산하여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강릉에 들러 자신을 환성喚醒시키기 위하여 지은 자경문의 초두에 나오는 글이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20세였다. 두 번째의 글은 초학자가 그 방향을 모르는 것을 근심하여 그를 가르치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하여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첫 장인 입지장立志章 서두에 나오는 글이다. 이것을 지을 때 율곡의 나이는 42세였다. 하나는 그의 나이 젊었을 때에 스스로를 각성시키기 위하여 지은 글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장년이 되어 초학자인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은 글이다. 한결같이 인간은 성인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지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율곡의 이와 같은 일관된 의지의 바탕에는, 모든 인간의 선한 성품에 대한 믿음이 들어있다.
사람의 성품이란 본래 선해서 고금古今과 지우智愚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어찌 성인만이 혼자서 성인이 되고, 나는 어찌하여 혼자 중생이 되는가.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여 아는 것이 불명不明하고 행실行實이 두텁지 못한 이유일 따름이다. 뜻이 서고 앎이 밝으며 행실이 두터움은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해서 남에게 구하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오직 행함이 있는 자 또한 이 같을지라”고 하였으니 나도 또한 마땅히 안자가 순을 바란 것을 법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서 율곡은 사람의 본성이 고금과 지우를 막론하고 선하며, 자신도 성인을 희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그러면 율곡이 말하는 성인은 어떤 사람인가? 유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요와 순, 우왕禹王과 탕왕湯王, 문왕과 무왕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율곡은 맹자와 주자의 주장처럼, 요와 순은 본성대로 한 임금이고, 탕왕과 무왕은 본성을 되찾은 임금으로 본다. “본성대로 하였다는 것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온전한 것을 부여받아, 이것을 더럽히는 일이 없을 뿐더러 조금도 몸을 닦을 필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성聖의 지극한 것이다. 본성을 되찾았다는 것은 몸을 닦아 그 본성을 돌이켜서 성인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것은 두 가지 종류의 성인을 인정한 셈이다. 하나는 요순처럼 선천적으로 성인의 성품을 온전히 받고 태어나 조그만 더러움도 없기에, 무위無爲로서 다스린 성인이다. 다른 하나는 탕무湯武처럼 성인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후천적으로 내면적 덕을 닦아(內聖) 외왕外王된 성인이다.
어떤 종류의 성인이든 성인은 인욕人欲의 사심이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성인은 생각에 있어서는 불사이득不思而得한 지知의 극치에 도달하고, 행위에 있어서는 불면이중不勉而中한 행行의 극치에 도달한 사람이다. “물物이 궁구窮究되기를 극진히 하고, 지知가 이르게 되기를 극진히 하고, 뜻이 그 성誠을 극진히 하고, 마음이 그 바르기를 극진히 한 것이은 성인이다. (…) 성인은 생각하고 힘쓰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이 되는 인물이다.” 이와 같은 성인은 지극히 통하고 지극히 바르며 지극히 맑고 지극히 순수한 기를 타고나서, 그 기질이 정수精粹하고, 천성이 그 체體를 은전隱全히 하여, 털끝마저도 인욕의 사私가 없기 때문에, 그 발하는 것이 마음이 하려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法度를 넘는 일이 없게 된다.
율곡은 모든 사람이 수행修行하면 이런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직 사람만이 기氣의 정正과 통通을 부여받았으며, 사람은 그 마음이 허영통철虛靈洞徹하여 온갖 이치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위修爲의 공부를 통해 탁한 것을 청하게 할 수 있고, 박駁한 것을 순수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리法理는 총명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만이 아는 것이 아니다. 비록 기품氣稟이 고명하고 통철通徹하지 못하더라도, 만약 성誠을 쌓아 공을 들이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총명한 이는 알기가 쉽기 때문에 도리어 역천力踐을 통해 그 아는 것을 채울 수 없지만, 성적誠積하는 이는 용공用功의 공功이 깊기 때문에, 이미 한 후에 역천力踐하기가 쉽다.”여기서 율곡은 총명보다는 오히려 적성용공積誠用功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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