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21-3. 시천주

이효범 2022. 5. 18. 06:43

21-3. 시천주

 

일원적 본체인 지기至氣의 생명력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난 것이 인간이다.

 

음양이 서로 섞여 비록 모든 만물이 그중에서 출현한다 할지라도, 오직 유일하게 인간만이 최고 신령한 자이다(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 最靈者也).

 

지기의 정수精粹인 인간은 한울님을 모심으로써 지기의 진화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대표적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 자신 속에 한울님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그 지고의 존재를 지극하게 모셔야 한다. 이것이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시천주侍天主라는 말은 동경대전21자 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시천주侍天主에서 란 섬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천주天主란 우리말의 하느님혹은 한울님의 한문 의역이다. ‘란 존칭하는 말이다. 수운은 시천주의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안으로는 신령한 것이 있고 밖으로는 기화가 있어서,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바꾸지 않는 것이다(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여기서 내유신령이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구석인 한울의 자아 자성自我自性하는 능동적 본성을 가르킨다면, ‘외유기화란 그 창조적 본성을 외적 세계의 물질과 환경에 조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일시적으로나 우발적으로 그치지 않고 변함없이 굳건하게 지속되는 것을 라고 한다.

이런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해월에 와서는 사람을 한울님같이 섬기라(事人如天)라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지위, 계층, 학식 혹은 나이를 떠나 인간 자체는 존엄한 존재이니 모든 사람을 한울님같이 존경하라는 뜻이다.

해월이 청주에 사는 서택순徐宅淳이라는 제자의 집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 제자의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었는데 해월이 그에게 누가 베를 짜고 있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제자는 며느리라고 대답했지만, 해월은 그게 아니라 한울님이 베를 짜고 있다고 고쳐 말해 주었다. 빈부의 차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한울님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해월의 이러한 인간 평등사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연장되어 어린이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가르침도 남긴다. 즉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그것인데, 그 이유는 어린이를 때리면 어린이 안에 모셔져 있는 한울님이 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가道家(동학을 믿는 집)에서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느님의 뜻을 상하는 것이므로 깊이 삼가야 한다. 도가에 사람이 오면 손님이 왔다고 말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여라. 사람의 마음을 떠나서 따로 한울님이 없고 한울님을 떠나서 따로 마음이 없다. 이 이치를 깨달아야만 도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수운이나 해월의 이런 동학의 가치관은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관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르다. 그 단적인 예를 해월이 말하는 나를 향하여 위패를 설치함(향아설위向我設位)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의식 가운데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신위를 젯상을 향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향벽설위向壁設位로 귀신을 향하여 제단을 설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해월은 인즉천人卽天의 입장에서 위패를 인간인 나 자신을 향하게 하라는, 즉 살아 있는 인간이 제사의 중심이 된다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옛날부터 제사를 지낼 때에 벽을 향하여 위패를 설치함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제 묻노니 부모가 죽은 뒤에 정령이 어디로 갔으며, 또 스승의 정령이 어디에 있는가? 믿음이 이치에 합할 것인가? 생각컨대 부모의 정령은 자손에게 전하여 왔으며, 스승의 정령은 제자에게 강림되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도다. 그러면 나의 부모를 위하거나, 나의 스승을 위하여 제사를 지낼 때는 그 위패를 반드시 자아를 향하여 설치함이 가하지 아니하냐.

 

이런 사상적 전환은 새로운 하늘과 땅을 기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해월은 그 한울님이 아무리 고귀해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잘 보존하고,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길러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양천주養天主 사상이다.

 

나도 또한 오장五臟이 있으므로 어찌 육욕肉慾을 모르리오마는, 그러나 내가 이를 하지 않음은 하느님(천주)를 양하기 위해서니라.

 

이제 여러분을 보니 자존自尊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가탄可歎할 일이로다. 나도 또한 육신이 있으므로 어찌 이런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내가 이를 하지 않음은 하느님을 양치 못할까 두려워함이니라.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단순히 잘 모시라고 하는 것보다, 그 한울님을 잘 길러 나가라고 하는 것이 더 적극적인 가르침이다. 이것은 수운이 말하는 시천주侍天主에서 자에 관한 새로운 확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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