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선에 대하여, 1)

이효범 2021. 7. 18. 15:59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선에 대하여,1)

 

안녕하셨습니까? 코로나 1차 백신을 맞고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816, 2차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받으면 코로나에서 해방되겠지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코로나의 불길이 잡히기는커녕 4차 유행으로 더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 이성을 힘껏 발휘하여 코로나를 막는 백신을 개발했더니,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변화시켜 인류를 계속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는 그래도 과학을 믿고 방역 전문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자신을 매개로 하여 이웃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자신이 그 매개물이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기본적인 도리일 것입니다.

나는 대학을 떠난 지 이제 2년이 되어갑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모든 교과서와 학습서를 불태웠다는 어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처럼, 나는 38년을 봉직한 학교도 학과도 학문도 모두 잊고 놀기에만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범행을 한 장소에 다시 가본다고, 시간이 지나니까 도망치고 싶었던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작업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도덕이나 윤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좋음)’이라는 개념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o 에 대하여(1)

 

구녕 이효범

 

서양 근대인들은 가치의 영역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眞善美라는 3대 가치가 그것이다. 학문은 진(the true)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도덕은 선(the good)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예술은 미(the beautiful)라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선(좋음, 착함, good)은 도덕적 가치이다. 도덕이나 윤리에서 이런 선과 짝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올바름, right)이다. 선은 (나쁨)과 대비되고, 의는 不義(그름, wrong)와 대비된다.

 

그러나 도덕적 가치인 (good)은 일상적으로는 다양한 의미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우선 한자인 은 크게 착하다()’라는 의미와 좋다()’라는 의미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착하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짓이나 마음가짐이 바르고 어질다는 뜻이다. 그리고 좋다는 것은 성질이나 내용이 보통 이상이거나 우수하다는 뜻이다. 우리말에서 착하다는 표현은 주로 사람에게 적용된다. ‘착한 나무착한 송아지처럼, 사람 이외의 대상을 말할 때는 조금 어색하다. 그러나 좋다라는 표현은 모든 대상에 두루 적용된다. ‘좋은 사람’, ‘좋은 행동도 가능하지만, ‘좋은 사과’, ‘좋은 하나님’, ‘좋은 정부’, ‘좋은 시대’, ‘좋은 산도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good)’이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도덕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좋음(nonmorally good)’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으로 착함(morally good)’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이나 문맥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사용한다. 한자의 이나, 영어의 ‘good’이나, 그리고 우리말의 좋음’,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일부 윤리학자들은 이 둘의 의미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프랑케나(William K. Frankena)이다.(W. 프랑케나, 박봉배역,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pp. 10~11 참조) 그에 의하면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것은 인격, 인격적 집단, 그리고 인격적 요소들인 반면, 모든 종류의 물질은 무도덕적으로 좋거나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나 그림, 지식, 자유, 민주주의 정부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하지 않는 이상, 이런 것들 자체를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