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16. 최시형)
o 안녕하시죠. 어느새 계절은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1년이 넘은 코로나19의 맹위는 아직도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이 소리 없는 전쟁으로 우리의 심신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수단인 코로나 백신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봅니다.
지금까지 ‘환경에 대하여’ 15편의 에세이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16편을 끝으로, 일단 이 주제에 대한 에세이는 마칠까 합니다. 12편은 서양의 환경 사상가들의 이론이었고, 3편은 노장과 불교의 환경이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편은 우리나라 동학의 환경이론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급히 쓴 에세이들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냥 쉽게 읽으시면서 현대 환경윤리의 전체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 초고들을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완성되어 다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21년 5월 11일 구녕 이효범 >
o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를 이은 2대 교주이다. 동학하면 우리는 사람이 곧 하늘님(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내천은 수운이나 그의 제자 해월 대에 생겨난 명제가 아니라, 동학의 발전 과정 속에서 의암 손병희 때 완결된 사상이다. 이 표현은 의암의 ?대종정의(大宗正義)?에서 처음 나온다. 수운은 ‘시천주(侍天主)’,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천인여일(天人如一)’을 말했고, 해월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주로 강조했는데, 이것을 의암이 ‘인내천(人乃天)’으로 집약한 것이다.
수운은 우주의 실재를 초월적 측면에서는 ‘상제’, ‘천주’, ‘하늘님(하느님, 한울님)’등으로 지칭하고, 내재적 측면에서는 ‘지기(至氣)’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지(至)’란 ‘극(極)’을 의미함으로써 만물의 본원, 천지의 본체를 뜻한다. ‘기(氣)’란 허령(虛靈)이 창창하여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모양이 있는 듯 하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 하나 보기 어려운 존재이다.(?東經大全? <論學文> 至者 極焉之爲至 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 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우주 만유는 지기에서 파생되어 다시 지기로 돌아간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나의 동포형제(人吾同胞)이다. 그리고 모든 자연도 나의 동포(物吾同胞)이다. 수운은 이런 우주의 본체를 인간의 경험으로는 알 수가 없고 또 그런 경험에 기초한 인간의 지식으로도 알 수가 없으며, 오직 형이상학적 직각(直覺)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지기(至氣)의 생명력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난 것이 인간이다. “음양이 서로 섞여 비록 모든 만물이 그중에서 출현한다 할지라도 오직 유일하게 인간만이 최고 신령한 자이다.”(?東經大全? <論學文> 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 最靈者也) 지기의 정수(精粹)인 인간은 한울님을 모심으로써 지기의 진화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대표적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 자신 속에 한울님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그 지고의 존재를 지극하게 모셔야 한다. 이것이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이런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해월에 와서는 ‘사람을 한울님같이 섬기라(事人如天)’라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지위, 계층, 학식 혹은 나이를 떠나 인간 자체는 존엄한 존재이니 모든 사람을 한울님같이 존경하라는 뜻이다. 해월이 청주에 사는 서택순(徐宅淳)이라는 제자의 집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 제자의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었는데 해월이 그에게 누가 베를 짜고 있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제자는 며느리라고 대답했지만, 해월은 그게 아니라 한울님이 베를 짜고 있다고 고쳐 말해 주었다. 빈부의 차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한울님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해월의 이러한 인간 평등사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연장되어 어린이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가르침도 남긴다. “도가(道家, 동학을 믿는 집)에서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느님을 뜻을 상하는 것이므로 깊이 삼가야 한다. 도가에 사람이 오면 ‘손님이 왔다’고 말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降臨)하셨다’고 말하여라. 사람의 마음을 떠나서 따로 하느님이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 따로 마음이 없다. 이 이치를 깨달아야 도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저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고 그것을 하느님(天)이라고 믿는데 이것은 참된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나 나의 굴신동정(屈伸動靜)이나 이 모든 것이 귀신(鬼神) 아닌 것이 없고 조화(造化) 아닌 것이 없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해월은 그 한울님이 아무리 고귀해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잘 보존하고,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길러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양천주(養天主) 사상이다.
해월은 양천주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함에 있어서, 무엇 무엇을 하면 한울님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즉 너무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 스스로를 추켜올리고 뻐기는 것, 사치하는 마음 등은 한울님이 자라나는 것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울님을 기르기 위하여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기 보다는 다만 나쁜 기운이나 삿된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면, 원래부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한울님이 저절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또한 해월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령함을 갖춘 것이 인간인데, 그 인간은 매끼 밥으로 그 소중한 생명을 유지하니, 한울님의 신령함이 실현되는 데에 밥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살고 이루는 것의 자료로 하여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매끼 먹는 밥이 단지 육체적인 영양 보충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한울님의 생명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사란 큰 감사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 종교적인 행사이다.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였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아는 데 있나니라.(萬事知 食一碗)”
또한 해월은 대인접물(對人接物)을 강조한다. 여기서 대인이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해악을 가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진실과 인의(仁義) 같은 덕으로 대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접물이란 물건을 대할 때도 한울님이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공경스러움을 놓지 말라는 의미이다. 물건을 공경하는 이유는 실천적으로 보면 절약 근검 정신이 극치에 이르면 자연히 물건을 공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우주 만물에도 한울이 깃들어 있다는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 때문이다. “저 새 소리도 하느님을 모심으로써 비로소 내는 소리다. 천도(天道)는 크고도 신묘하여 무슨 일이고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늘의 일월과 무수한 별들로부터 땅의 산악과 하찮은 미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천도의 영광이다. 지금 우속(愚俗)이 산이나 물에 복을 기구하여 때로는 이험(異驗)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천지의 영묘(靈妙)가 어디나 조림(照臨)하고 있다는 증거다.” 해월은 물건이나 동물을 상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동학의 도에 어긋나는가를 ‘이천상천(以天傷天)’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사용해 밝히고 있다. 즉 ‘한울로써 한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물이나 동물을 다치게 하는 것은 바로 한울을 다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도 공경해야 한다.
해월의 사물의 공경하라는 주장 이면에는 그의 ‘천지부모 일체설’이 기반하고 있다. 하늘과 땅은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하니 부모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해와 달은 우리를 비추어 주고, 만물이 서로 변화해 나간다. 그러므로 천지는 곧 부모이고, 부모는 곧 천지이며. 천지부모가 일체이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인 셈이다. 그런데 천지가 부모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 오만 년이 지났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하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는 도리로써 천지를 공경스럽게 받들 수 없다. 이런 생각에서 해월은 땅 아끼기를 어머니 살같이 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침을 멀리 뱉고, 코를 멀리 풀고, 물을 멀리 뿌리는 것은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이런 사상은 해월의 십무천(十毋天)과 내수도문(內修道文)에 잘 나타나 있다. 십무천은 (1) 한울님을 속이지 말라 (2) 거만하게 대하지 말라 (3) 상하게 하지 말라 (4) 어지럽게 하지 말라 (5) 일찍 죽게 하지 마라 (6) 더럽히지 말라 (7) 주리게 하지 말라 (8) 허물어지게 하지 말라 (9) 싫어하게 하지 말라 (10) 굴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수도문은 동학을 믿는 부인들을 위해 지은 것이다. (1) 부모를 잘 섬기고 형제자매를 잘 위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사랑하고 종을 자식같이 여겨라. 소, 말, 돼지 같은 가축이라도 학대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이 노하신다. (2) 아침저녁에 밥 지을 쌀을 낼 때에 하느님께 심고(心告)하고 반드시 깨끗한 물을 길어다가 음식을 깨끗이 지어라. (3) 묵은 밥을 햇밥에 섞지 말라. 그러면 하느님이 감응(感應)하지 않는다. (4) 더러운 물을 함부로 아무데나 버리지 말고 침을 아무데나 뱉지 말고 코를 아무데나 풀지 말라. (5) 잠자기 전에 하느님께 심고하고 출입할 때에도 심고하여 一動一靜을 하느님께 심고하여라. (6) 모든 사람을 하느님같이 여기고 손님이 오면 하느님이 오셨다고 하여라. 어린이를 때리지 마라. 이것은 하느님을 때리는 것이다. (7) 아기를 배면 더욱 몸을 조심하여 함부로 먹지 말라. 불결한 것을 먹으면 태아에 해가 미친다. (8) 남을 시비하지 말라. 이것은 하느님을 시비하는 것이다. (9)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고 오직 부지런하여라. 이렇게 해월의 십무천과 내수도문 속에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존중사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환경보존을 위한 새로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해월의 경물(敬物) 사상은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함께 후에 천도교의 삼경(三敬) 사상으로 집약된다. 수운에 따르면 경(敬)은 한울님을 숭모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을 잠시도 늦추지 않고, 타락된 현상에 눈을 돌리지 않으며, 마음을 정(定)하여 천덕에 부합하려는 신념적 태도이다. “공경할 바를 알지 못하거든 잠깐이라도 흠모하고 숭앙함을 늦추지 말며, 내 마음을 자나 깨나 두려워하라.”(?東經大全?, 前八節, 後八節) 우리가 이런 태도로 사물을 극진히 대한다면 자연은 그 신령스러운 모습을 온전히 보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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