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빌 게이츠의 이혼에 대하여)

이효범 2021. 5. 14. 11:02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빌 게이츠의 이혼에 대하여)

 

구녕 이효범

 

큰불이 난 것처럼, 억만 장자의 이혼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번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아내 멀린다 게이츠의 이혼이다. 부부의 내밀한 관계는 밖에서 알 수 없고, 두 사람 말을 솔직히 들어봐야 그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언론에 노출된 몇 가지 단편적인 것만 가지고 밖에서 왈가왈부 하고, 더 나아가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남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는 걸. 나는 처음에는 이 선한 부부가 이혼한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들 부부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재단을 만들어, 지난 20여 년 동안 550억 달러(62조 원)를 기부하여, 에이즈 같은 질병에서의 세계의 건강과 영유아에 대한 지원에 앞장서 왔다. 아무리 이들 부부가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을 기꺼이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날강도 같은 트럼프라면 몰라도, 이런 사회의 모범적인 부부가 갑자기 이혼한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말이다.

 

이혼의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게이츠 부부는 트위터를 통해 이혼 소식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서로의 짝으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유를 들었다. 도대체 선문답 같은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부부는 27년 간 결혼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세 자녀를 두었다. 또 막내가 올해 대학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혼자 상상을 해보았다. 사실 27년의 결혼생활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긴 시간이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에 빠질 때 가지는 설렘과 열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긴 결혼 생활 동안 친구 같은 편안함과 믿음은 가능하지 몰라도,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열띤 사랑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 선진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신성한 결혼의 약속 때문에, 결혼 중에 다른 이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불륜이며 매우 부도덕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동물 세계 속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기이한 예이다. 그러면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사랑이 식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중독된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 때문에 가정에 충실할 수 없어, 결혼 전에 그런 걱정을 멀린다에게 고백했다는 말도 있다. 비교하는 것이 우습지만 나도 결혼 전에 출가하여 중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용기가 없어 실제로 세속과 인연을 끊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그런 꿈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결혼하려니 찝찝했다. 그래서 신혼 초에 참으로 무책임한 고백을 하고 말았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큰 후에는 집을 떠나 산속에서 수도를 할지 모른다고. 아내는 딸을 둘 낳고 살아도 천방지축인 남편이 언젠가 진짜로 가정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칠지 몰라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나는 게이츠도 그럴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동안 가정적으로 충실했다. 막내도 성인이 되었다. 이제 내가 없어도 가정은 얼마든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아내 멀린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가정적인 일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가겠다. 젊었을 때 주위에서 모두 말렸지만 끝내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에 몰두하여 성공하였듯이, 늙었지만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인생의 새로운 일에 모험을 걸겠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가 진정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나는 게이츠가 이렇게 위대하게 결심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빌은 시애틀에 있는 전라 나이트클럽 무용수들을 데려와 나체 파티를 즐겼고, 심지어 제프리 엡스타인과 사귄 호색한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미성년자와 성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이다. 나는 정말로 혼란스러웠다. 빌이 설마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안타까웠다. 그런데 빌 게이츠의 장녀 제니퍼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족사진을 올렸다. 아버지만 뺀 가족사진을 올리면서 언제나 우리의 여왕이자 영웅인 엄마라는 글을 적었다. 이것은 결국 파경의 책임이 아버지라는 뜻일 것이다. 빌의 이혼에 그 집의 장녀가 던진 이 말보다 더 신뢰할 수 징표는 없을 것이다. 카톨릭 교인인 멀린다가 자녀 양육과 교육을 위해 참고 참다가, 막내가 대학에 진학하니까 드디어 칼을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앞으로 빌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나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영국 찰스 왕세자가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는 다이애나와 이혼하고 카밀라와 살고 있다. 그가 다이애나를 버렸을 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착하고 예쁜 다이애나를 버린 찰스를 욕했다. 겉으로 보면 찰스의 바보 같은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부의 속궁합은 오직 부부만 알 뿐이다. 다이애나와 살아보지 않은 남이 그녀의 진면목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쩌면 바람둥이 빌도 정숙한 아내 멀린다와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옛날의 편안한 친구를 다시 만나 소꿉장난처럼 지지고 복고 알콩달콩 사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다른 하나는 빨리 눈물로 회개하고 멀린다에게 돌아가는 길이다. 빌은 같은 업종에 종사했던 영원한 라이벌 스티브 잡스를 잘 알 것이다. 잡스는 병상에서 마지막 편지를 썼다. 자신은 비즈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상징이었지만 일터를 떠나면 즐거움이 많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사회적 안정과 부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고 간절히 당부한다. 빌은 1955년생이니까 아직 젊다. 거기에다 사업에 큰 실패도 없이 성공한 세계 최고의 부자이다. 거기에다 골프광이라니까 건강도 양호한 상태이다. 그가 무엇이 무섭겠는가? 분명히 세상과 인생을 호언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빌이 대학을 중퇴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지만, 자신의 인생에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는 대학 4년 동안 전공 이외에도 교양과 인문과목을 폭넓게 접했어야 했다. 외곬으로 가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인류의 오랜 전통과 만나야 했고, 자신의 균형 잡힌 가치관을 형성해야만 했다. 돈 많은 남자가 여자 문제에 실패는 얼마든지 많다. 어쩌면 인간이 동물인 이상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을 뛰어 넘어 높은 곳과 먼 미래를 생각할 줄 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 말처럼 죽음을 선구(先驅)해 보아야 한다. 미리 죽음 앞에 달려가서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그 나이에 젊은 여자에게서 삶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구원과 인생의 기쁨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빌 게이츠여, 빨리 두 손 들어 항복하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오랜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조한 사막을 참고 걷다보면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사랑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설렘과 그리움만이 사랑이 아니고, 눈물과 고통도 진짜 사랑인 것이다.

 

어제 아내는 저녁 식탁에서 동창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학교에 근무할 때는 동창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더니, 은퇴한 후 동창회 이사가 되더니 만남이 빈번해졌다. 이번에는 동창 이사 어머니 상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친구가 아내한테 다른 친구를 흉보면서 만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이혼한 주제에 돈은 많은지 너무 사치를 하고 친구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그 말끝에 아내는 옛날도 아니고 현대에는 사정이 생기면 이혼도 할 수 있는 거지, 그것이 무슨 큰 흠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여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렇잖아도 퇴직한 후에 젖은 낙엽처럼 초라해져 있는 나인데, 아내는 언제 저렇게 씩씩하고 대범해져 있었는지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나는 나를 방어해야만 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니야, 이혼 한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그러니 앞으로 당신은 절대 그런 사람과 만나지 마.” 아내는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무언가 항의할 듯 하다가 너무나 내가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완고한 모습을 보이니까 말을 참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그 못된 서양을 닮아가고 있다. 나이 든 나 같은 한국 사람은 살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