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그리고 원시 생명체로
화학 진화설은 지구의 생성 초기의 어느 한 때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진화가 일어났고, 뒤이어 유기물에서 코아세르베이트와 같은 복합체의 형성이 일어났으며, 이것으로부터 서서히 원시 생명체가 되었다고 하는 생명 기원에 관한 자연 발생설이다. 이런 생각은 오파린의 저서 ?생명의 기원?(1893)에서 처음 나타난다.
약 137억 년 전에 우주는 이른바 대폭발(big-bang)에 의해서 에너지와 물질이 탄생했다고 믿어진다. 수십억 년이 지나는 동안 물리적, 화학적 결과로 물질과 복사 에너지가 등장했다. 태양과 지구가 소속한 은하수를 포함한 은하계들이 생겼으며, 한편 이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다. 물질이 축소되면서 폭발과 냉각이 교대로 일어나고 있는 불덩어리인 별이 생겼다. 이렇게 생겨난 별에서는 간단한 원자들이 충돌하여 큰 원자로 융합되면서 현재 지구 위의 생물을 지속시켜주고 있는 태양 광선과 같은 복사 에너지를 방출했다. 몇몇 별들의 중력장 안에서는 원자 융합 단계를 거친 냉각된 물질 덩어리가 융축 融蓄되면서 혹성으로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이라는 별의 혹성 중의 하나인 지구의 연령은 약 50억 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50억 년 전의 지구의 상태에 관해서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우주 물리학적 데이터들을 보면 당시의 지구는 대단히 높은 온도의 기체 덩어리였고, 그 크기는 현재보다 훨씬 작았다고 추측된다. 이 초기 지구는 점점 냉각되면서 그 중력으로 우주진宇宙塵을 점점 퇴적시켜 질량이 커졌다. 질량이 증가함에 따라 중력도 증가하여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 가운데 무거운 것은 지구 중심부로 집결되고, 가벼운 것은 지표로 이동하여 지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체 상태의 가벼운 물질은 원시 대기층을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초기 지구에서는 고열로 말미암아 원자들의 결합이 불가능하였는데, 지구가 점점 냉각되면서 원자들 사이에 결합이 형성되어 간단한 각종 분자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초기 지구에서 대기층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들은 수소(H), 탄소(C), 질소(N)들이었는데, 이들이 지구의 냉각에 따라 암모니아(NH3), 메탄(CH4), 물(H2O) 들을 형성하였다. 오늘날에도 초기 지구와 같은 상태라고 생각되는 여러 천체에서 이러한 조성의 대기층이 관측되고 있다.
이 대기 조성 분자들 가운데, 물은 지구의 고열로 말미암아 수증기가 되어 지구의 고층에 올라갔다가 냉각 응축되어 지표면에 떨어지고 다시 수증기가 된다. 이러한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는 동안 지각은 더욱 냉각되어 갔고, 화산의 활동으로 생긴 지각 변동은 지표를 바다와 육지로 구분하였다. 이와 같이 형성된 원시 지구의 바다는 지표면의 여러 가지 물질과 대기 중의 메탄, 암모니아 따위의 기체를 녹여 복잡한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것이 초기 약 10억 년 사이에 벌어진 원시 지구상에서의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이 초기 지구의 대기는 산소가 없는 환원성 대기였다고 추측된다. 산소가 없었으므로 오존(O3)도 존재하지 않아서 현재와 같은 대기권의 자외선 흡수층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태양으로부터의 강렬한 빛에너지는 그대로 지표면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초기 지구의 조건에서 암모니아, 물, 그리고 메탄 분자들은 서로가 무수히 많은 충돌을 거쳐 중합 또는 다른 화합물들과 결합하여 간단한 유기 화합물들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의 근거는 생명의 기원을 밝히려는 미국의 유명한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의 실험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밀러는 그의 실험 결과를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하였는데, 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갖가지 유기물들은 원시 지구의 대기 구성 성분으로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유레이H. C. Urey, 버날John Desmond Bernal 등이 제창해 왔다. 이 원시 지구의 대기 조성은 현재와 같은 질소, 산소, 물, 이산화탄소 등이 아니고, 메탄, 암모니아, 물, 수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들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하여 CH4, NH3, H2O, H2 기체들을 유리관 속을 순환시키면서 방전을 가해 주었다. 그 결과 이 관 속에 아미노산이 생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위의 기체와 물을 유리관 속에 넣고 물을 끊이면서 기체와 수증기를 순환시키고 그 순환 과정 중에 전기 방전을 가해 준 것이다. 이 실험에서 물을 끊인 것은 원시 지구의 고열 상태를 재현한 것이고, 전기 방전을 가한 것은 원시 지구의 대기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공중 방전을 재현한 것이다. 또 원시 지구 표면에서는 방대한 양의 자외선도 쏟아지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밀러의 실험에서 이것은 생략하였다.
위와 같은 장치에서 물을 끓이면서 순환시키면 물은 수증기가 되었다가 냉각되어(원시 대기에서 비가 쏟아지듯이) 다시 되돌아왔다가 다시 수증기가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와 같이 약 1주일을 순환시킨 뒤 관 내용물을 분석해 본 결과, 그 속에는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포름산,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락트산 등 여러 유기산들도 합성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원시 지구의 환경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크고 복잡한 탄소 화합물의 재료가 자연적으로 합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 후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실험에서 퓨린과 피리미딘, 두 화합물의 유도체들도 여러 종류 합성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밀러가 검출한 아미노산은 단백질의 구성 물질이고 퓨린과 피리미딘은 핵산의 구성 물질이어서, 다같이 생명체의 구조적 기능적 기본 물질로 알려져 있는 물질들이다.
이 실험은 단적으로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생명체의 존재 없이 합성될 수 있으며, 또 원시 지구상에서는 대단히 풍부하게 각종 유기물이 합성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원래 유기물은 생명체에 의해서만 생명체 안에서 합성되는 물질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유기물이란 탄소와 수소 원자를 포함하고 있는 화합물인데, 각종 당류, 지방산, 아미노산, 지방, 단백질, 핵산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많은 종류의 유기물들은 모두 생명체 안에서만 또는 한때 생명체였던 물체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생명체에 의해서만 합성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828년에 독일의 화학자 뵐러Friedrich Whler가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의 일종인 요소(CO(NH2)2)를 시험관 속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생명체에 의한 유기물 합성론은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뵐러는 자신이 생물과 그토록 명백하게 연관된 화합물을 무無로부터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요소라면 동물의 오줌으로 생성되는 탄소와 질소 노폐물이다. 이와 같은 무생물계로부터 유기물의 합성 가능성은 그로부터 훨씬 후인 20세기 중엽에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의 바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실험 결과에 의하여 원시 지구가 앞에서 생각하였던 바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면 원시 바다에서 무기물로부터 간단한 유기물이 합성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과학자들은 바다에서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면 해저의 열수 분출공 환경에서 복잡한 유기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저의 열수 분출공 환경은 생명체에 필수적인 화학물질이 풍부하다. 그뿐만 아니라 열수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고 철이나 망가니즈 등의 금속 이온이 촉매로 작용하여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원시 바다에서 처음으로 유기물이 만들어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억 년 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로 남아프리카에서 31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에서 22종의 아미노산이 최근에 검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간단한 유기물들은 그 당시의 상태에서 오랜 시일을 경과하는 동안에 점차 복잡한 고분자 유기물을 자연 합성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과정도 완전히 우연의 연속으로서, 수많은 저분자 유기물들이 무수히 많은 충돌을 통하여 분자 조성이 한층 더 복잡한 고분자로 성장하고 또 무기물들과도 반응하여 각종 복합물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여러 가지 아미노산들의 결합에 의하여 폴리펩티드polypeptide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또 수많은 반응을 거쳐 우연히 하나의 촉매 기능을 지닌 효소로까지 발달하였다.
실제로 폭스S. W. Fox는 1957년에 여러 가지 아미노산 혼합물을 섭씨 90℃도로 가열한 다음 서서히 냉각시켜 폴리펩티드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나아가서 아미노산의 혼합물에 폴리인산을 가하여 섭씨 71℃에서도 폴리펩티드를 합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구의 대기 온도가 이미 섭씨 100℃ 정도로 냉각되어 있었을 당시의 상황에서는 위와 같은 유기 반응이 충분히 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폭스가 실험실에서 합성한 폴리펩티드 중에는 옥살아세트산, 피루브산, 포도당, ATP 등 몇 가지 유기물을 가수 분해하는 반응에 촉매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것은 원시지구에서 자연 합성된 폴리펩티드들이 효소로까지 발전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촉매 기능을 지닌 폴리펩티드, 또는 단백질 분자들이 만들어짐에 따라 각종 유기 반응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각종 탄수화물과 지질도 풍부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며, 퓨린과 피리미딘의 유도체들도 당 및 인산과 결합하여 핵산의 구성 단위인 뉴클레오티드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고, 이들이 수없이 연결되어 고분자 핵산이 되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고분자 물질이 원시 생명체의 바탕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과정을 오파린은 그의 유명한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달걀 흰자위의 주성분인 알부민과 같은 단백질의 용액은 그 분자가 용액 속에서 균일한 분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투명하게 보이지만, 전기적 하전이 서로 다른 두 단백질을 섞으면 혼탁해진다. 이 혼탁해진 용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액체 속에 또 액체의 방울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방울의 표면에는 표면 장력으로 말미암아 단백질 분자들로 구성된 막이 형성되어 있어서 두 액체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액체 속에 생긴 액체의 방울을 코아세르베이트라고 하는데, 이 방울은 두 개가 합하여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주위의 물질을 흡착시켜 어느 정도 커지면 두 개로 갈라지기도 한다. 또 소금과 같은 것을 가하면 그 크기가 줄어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삼투 현상에 의하여 내부의 물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질들은 살아 있는 세포들이 나타내는 물리적 현상과 대단히 흡사하다.
오파린은 이 코아세르베이트가 원시 생명체의 시초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원시 지구의 바다 속에서 농축된 고분자 유기물들로부터 이러한 코아세르베이트가 무수히 생겨 그 조성도 복잡해져서 궁극에는 스스로 증식하고 스스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능력을 지닌,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생물의 원형질 덩어리와 같은 원시 생명체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폭스도 오파린의 코아세르베이트설과 본질적으로 같은 주장을 발표한다. 그는 아미노산들을 고농도로 섞어 가열하였다가 식히면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가 형성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관찰하였다. 그리고 이 단백질을 물에 녹인 다음 다시 가열하였다가 냉각하면 박테리아와 비슷한 크기의 무수히 많은 입자가 생기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는 이 입자들을 미크로스페아microsphere라고 불렀는데, 이것도 코아세르베이트와 마찬가지로 단백질의 막에 의해 주위의 액체와 격리되어 있으며 또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의 살아 있는 세포와 유사한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
폭스는 이 미크로스페아가 주위의 여러 가지 물질을 흡수 또는 흡착시켜 그 조성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궁극에 가서는 원시 생명체로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자연 발생설은 수십억 년의 먼 과거의 한 때, 그 당시의 지구의 특수한 상황 아래서 우연히 한 번 가능하였고, 그 후 지구가 냉각됨에 따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는 모든 생물은 생물에서만 탄생할 수 있다.
이런 화학 진화설에 따르면, 첫째, 생명체라는 것은 물질로부터 만들어졌고, 둘째, 그 형성은 무기물에서 유기물, 그리고 원시 생명체로의 연속된 반응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긴 과정에서 어디서부터가 생명체이고 어디까지가 단순한 물질, 즉 무생물이라고 확연히 경계를 그을 수가 없다. 이것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뚜렷한 경계 또는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양자는 하나의 연속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가설은 생명의 본질을 물질의 바탕에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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