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3. 생물학적 인간론

이효범 2022. 2. 19. 10:00

5장 자연과학적 인간론

 

13. 생물학적 인간론

 

다윈의 학설(인간과 원숭이의 유사성에 대한 학설)

틀리기를 기원합시다. 그러나 그가 옳다면

그의 학설이 널리 퍼지지 않기를 기원합시다.

제임스 트레필James Trefil, ?인간 지능의 수수께끼?

 

 

 

13-1. 투쟁과 도태의 생명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이 생명을 갖고 살지만 막상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명대신에 생명 현상을 나타내는 구조물인 생명체의 특징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런 생명체는 자극에 반응한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여 호흡하면서 자신을 유지한다. 생명체는 계속 성장, 변화한다. 생명체는 자신과 동일한 개체를 재생산하는 생식을 한다. (---) 생명체는 우주의 무질서함(entropy)이 계속 증가한다는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에 반하여, 외부 에너지를 이용하여 무질서도가 더 적은 상태의 형태가 있는 개체를 만들고 이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생명체만의 고유한 특징이l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자신을 만들기 위한 정보를 전달하여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 개체를 생명체라고 이야기한다.”

생명체에 관한 생물학의 역사는 한마디로 생기론生氣論과 기계론機械論의 투쟁사라고 할 수 있다. 또 기계론이 생기론을 과학의 세계에서 축출해 나간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생기론은 생명 현상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초자연적인 힘, 즉 생기에 의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이 초자연적인 힘은 창조주, 조물주, 신 등의 이름으로 불리었고, 인류 집단에 따라 그 힘의 주체나 해석도 가지각색이었다.

이 생기론은 중세기 서구의 교회 사상과 부합되어 사회에서 당연한 이론으로 수용되었다. 또한 종교, 사회 윤리, 가치관 등의 기저를 이루면서 20세기 초까지 전 인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생기론에 의하면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하였고, 따라서 생물의 종은 현존하는 그 모습 그대로 옛날에 창조된 것이어서 종이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생기론은 생명의 신비를 지극히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생명 현상 그 자체가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이 현상이 초인간적인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하여 설계되고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생명의 신비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다윈이 제창한 생물 진화론은 당시를 풍미하고 있던 생기론에 일대 수정을 일으켰다. 다윈은 각 종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오히려 한 종이 다른 종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각 개체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하며, 제한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 각 개체들이 처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된다. 같은 종의 개체들이라도 서로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며 이 때문에 자연 도태가 생긴다. 이러한 생존 경쟁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미미한 변화라도 진화를 야기하는 변화라면 무엇이나, 그것이 어떤 종의 개체에 조금이나마 이익이 된다면 그 개체의 생존에 기여할 것이고, 대부분 그 후손에게도 유전된다.

그러므로 다윈에 의하면 진화를 통해 후손은 한층 더 유리한 생존의 기회를 맞게 되며, 그에 따라 각 종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도 점진적으로 개선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한 종은 그것의 본성을 완전히 바꿀 수 있으며,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번식을 하는 것은 종이 아니라 종의 개체이기 때문에, 다윈도 종의 개체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자연 도태(natural selection)’라고 불렀다.

다윈의 진화론은 현존하는 모든 종은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가 공통 조상인 어떤 한 종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도 역시 이 진화의 산물이어서 다른 모든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원시 공통 조상에서 분화되어 온 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861년 영국의 생물학자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와 오웬 사이에 벌어진 해마(Hippocampus) 논쟁, 즉 인간의 뇌에만 해마가 있어 인간은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는 논쟁은, 자연에 대한 일반론을 주장하는 위대한 박물학자들에게조차도 인간을 예외로 두지 않을 수 없는 당시의 뿌리 깊은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자연 도태의 공동 주창자인 월리스Alfred Wallace는 진화에 있어서 자연 도태의 역할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인간의 뇌만은 예외로 인정하여 끝내 진화론을 인간 정신에까지 적용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모든 생명 현상에 그의 유물론적 진화론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에 연속성을 주장하였다.

이런 진화론에 대하여 진화론을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은, 점진적인 변이와 자연 상태에 의한 생물 종의 출현은 필수적으로 중간 형태의 생물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었음을 증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간 형태의 것에 해당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조새의 화석과 같이 중간적인 특징을 갖는 것처럼 해석되는 화석은 하나의 독립된 생물 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중간 형태의 화석이 결코 발견된 바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이제 많은 진화론자들도 동의를 구하고 있다고 제시하며, 일부 진화론자들이 기존의 이론을 대체하기 위하여 점단식 평행 이론또는 괴물 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유전학이 이해하고 있는 유전의 법칙을 무시한 궤변이라고 항변한다.

다윈은 진화에는 아무 목적이 없으며 정해진 방향도 없다고 말한다. 개체들은 다음 세대에게 한층 더 풍부하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며, 그러면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나갈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필연적으로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진화라는 관념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유래?에서 다윈은 인간의 마음과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의 정신적 삶을 뚜렷이 구분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입장을 완전히 반대한다. 그는 모든 정신은 그것이 인간의 것이든 동물의 것이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마음이 다른 동물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과거부터 진화해 왔으며 지금도 어떤 연속선상에서 진화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 ; Reflections on Natural History?를 쓴 굴드J. S. Gould에 따르면 다윈은 유물론의 일관된 철학을 그의 자연 해석에 적용시켰다. 따라서 물질은 모든 존재의 기초이며, 정신과 영혼 그리고 하느님까지도 복잡한 신경 세포의 놀라운 성과를 표현하는 낱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서양 사상의 전통을 밑바닥에서부터 뒤엎는 것이다. 그래서 굴드는 서양 세계에서는 아직도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과학적인 것에 있다기보다는 다윈의 메시지에 담겨 있는 급진적인 철학 사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참된 다윈 정신은, 인간은 예정된 과정의 가장 위대한 산물이므로 지구와 그 생물을 지배하고 소유할 운명을 지닌 존재라는 서양인들의 오만한 사상을 부정하는 서양 가치 체계에 대한 중대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진화론은 생기론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사상이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현대 생물학의 분석적 방법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상은 당시의 생물학에 커다란 하나의 과제를 안겨 주었다. 그것은, 그러면 이 최초의 공통 조상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 즉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였다. 이러한 의문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생물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포자와 같은 종류의 생명체가 다른 천체로부터 운석에 묻어서 지구로 이동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외계로부터의 생명 도래설은 그 포자의 원천이 무엇이며, 극심한 외계 공간의 조건과 지구 대기층으로 통과할 때의 불같이 뜨거운 악조건에서는 어떤 형태의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또한 16세기 전까지는 생물이 자연 발생에 의해 생길 수 있다는 생명의 자연 발생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지구에서는 생명의 자연 발생적 기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1680년경의 의사이자 시인인 피렌체의 레디Francesco Redi의 실험은 썩어 가는 고기에서 구더기가 새롭게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동물이 자발적 발생에 의해 생긴다는 오래된 미신을 타파했다. 200년 후 파스퇴르L. Pasteur는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도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미리 존재하는 박테리아로부터만 생겨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후 많은 연구자들이 여과성 바이러스와 같은 매우 작은 생물체라도 비바이러스성의 물질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현재의 지구에서는 생명의 자발적인 발생이 불가능하지만 지구 상태가 현재와 매우 달랐던 수십억 년 전에는 최초의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생겨날 수 있었다고 추측된다. 그러므로 현재는 오파린A. I. Oparin 등이 말하는 화학 진화설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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