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4. 이타성
성악설을 주장한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보통 이타성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자비심도 사실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으로서, 자기가 남들보다 더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 생존이라는 자기 이익을 위한 동기로부터 생겨난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철학자 홉스만 한 것이 아니다. 다윈도 자연선택에 의거해서 진화하는 모든 생물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고,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는 오로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영향으로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생물체를 ‘이기적 유전자로 프로그램 된 기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도덕과 윤리의 근거가 되는 이타성을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가?
실제로 자연계에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많다. 자기 군락에 위험이 닥치면 일벌은 가차 없이 달려 나가 적의 몸에 독침을 꽂고 두 시간 후면 죽는다. 돌고래는 부상당한 동료가 호흡할 수 있도록 물 밖으로 밀어 올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늑대와 들개는 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도 고기를 동료에게 나누어 준다. 침팬지는 잘 익은 과일로 서로를 인도한다. 톰슨가젤 영양은 들개 무리를 발견하면 스토팅 걸음을 취한다. 이런 예들은 끝없이 거론할 수 있다.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생물학적 근거를 갖는 이타성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런 이타성을 크게 혈연 이타성(kin altruism), 호혜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 집단 이타성(group altruism)으로 나눌 수 있다. 혈연이타성은 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것은 자연선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희생적 흰개미 병정은 그 부모의 여왕과 왕을 포함한 군체(colony)의 구성원을 보호한다. 그 결과 병정개미보다 번식력이 더 뛰어난 자매가 번성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질녀와 조카가 더욱더 늘어남으로써 이타적 유전자는 증식한다. 우리 인간도 혈연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 다음으로는 친구나 이웃 등을, 그리고 국가나 민족 등의 집단에 대해서 애정을 쏟는다.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은 이러한 행동을 혈연선택이론으로 해명했다. 그는 rb-c>0이라면 협력행동이 진화될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여기서 r은 이타주의자와 수익자 사이의 혈연도(relatedness)이고, b는 이타적 행동으로 늘어날 수익자의 새끼수이며, c는 이타주의적 행동으로 줄어든 새끼의 수이다. 이 공식에 의하면 r과 b를 곱한 수에 c를 뺀 것이 0보다 크면 이타주의적 행동은 가능하다. 여기서 개체 간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도가 중요하다. 그래서 도킨스는 “혈연선택으로 가족 내 이타주의를 해명할 수 있는데, 혈연관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선택이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호혜적 이타성은 비록 혈연관계가 없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베풀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이익을 베풀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줌으로써 서로 생존하여 진화한다는 것이다. 호혜적 이타성은 인간과 지적인 능력을 갖춘 동물에게서만 나타난다. 호혜적 이타성의 확산에는, 도움을 줄 만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구분하는 능력과 도움에 상당하는 보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아는 능력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집단 이타성은 자연선택을 일단一團의 개체로 확대한다. 그리하여 자연선택이 유전자나 개인 유기체 수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벌떼나 가축떼와 같은 유기체들의 떼거리 수준에서도 일어나는데, 이러할 때 이타적인 존재가 많은 떼거리가 생존하여 진화한다는 것이다. 고립된 집단 내에서 호혜성을 유지하는 원숭이들은 서로 털을 다듬어줌으로써 기생충을 제거하여 건강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의 원숭이들은 결국 기생충 등으로 쇠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집단 이타성은 동물들에 비해 인간의 윤리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 인간사회에서는 상벌을 통한 격려와 비난 등의 문화적 요인이 집단 이타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이타성은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기적 인간이 집단 내에서 이타주의적 인간보다 더 번창할 수 있지만, 집단에서 보면 이타적 인간이 많은 집단이 이기적 인간이 많은 집단보다 더 번창할 수 있다. 개체의 수준에서 진화를 설명했던 다윈에게는 집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개체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집단 선택(이타성)을 도입하면 이런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일벌 하나의 죽음 덕분에 군락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비록 그 일벌의 몸속에 있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하지만, 그 유전자와 조상이 같은 유전자들이 친족의 몸을 통해 더 많은 복사체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체 선택만이 지배한다면 사회는 해체될 것이고, 거꾸로 집단선택만이 지배한다면 인류 집단은 개미 군락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이타적인 동기를 가진 개체들이 오히려 생존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활용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이기적인 동기를 갖는 죄수들보다 이타적인 동기를 갖는 죄수들이 출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타적인 성향이 오랜 옛날 우리의 먼 조상의 생존에도 도움을 주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해준다. 죄수의 딜레마에선 ‘팃포탯(Tit for Tat, TfT, 맞대응전략)’이 가장 우수한 전략으로 밝혀졌다. 되갚음을 의미하는 팃포탯은 ‘처음에는 협력하라.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그 전에 행동한 대로 따라서 하라’는 두 개의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를 처음 제기한 로버트 엑슬로드Robert Axelrod는 『협동의 진화』에서 “상호 협력은 중앙 통제 없이도 이기주의자의 세계에서 출현할 수 있다. 그것은 호혜주의에 입각한 개체들의 집단에서 시작된다.”라고 요약했다. 이 연구는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가 이타성의 기원을 설명해주므로 사회생물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상리공생의 진화를 뒷받침해 주므로 진화생물학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이타적 동기를 선호한다. 이기적으로 동기지워진 사람들보다 이타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훨씬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는 타인의 이기적인 동기와 이타적인 동기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재능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얻어내는 이타적 성향을 가진 자들만이 진화에서 선택된다. 호혜적 교환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경우에 파트너로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면, 진화라는 측면에서 타인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유리해진다.
그러나 순수한 이타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협동은 진화의 수수께끼이다. 다른 생물들과 달리, 인간은 때로 큰 집단 속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이나 테레사 수녀처럼 유전적인 유연관계가 없는 낯선 이들과, 또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이들과 자주 협동을 한다. 놀라운 것은 번식상의 이익이 작거나 없을 때에도 그런 행동을 한다. 이런 협동 양상은 혈연선택의 진화론과 신호 전달 이론이나 호혜적 이타성 이론과 관련된 이기적 동기로는 설명될 수 없다.(Ernst Fehr, Simon Gächter), 그래서 윌슨Edward Wilson은 협동이라는 현상이 인류의 선사 시대에 타고난 반응들의 조합을 통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개인들의 지위 추구, 높은 지위에 있는 개인에 대한 집단적인 끌어내림, 집단의 규범을 너무 벗어난 이들을 자진하여 처벌하고 징벌하려는 충동이 그런 반응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간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생물학적 인간론 (0) | 2022.02.19 |
---|---|
12-5. 민족 갈등과 공격성 (0) | 2022.02.14 |
12-4-3. 문화적 차이 (0) | 2022.02.12 |
12-4-2. 성의 차이 (0) | 2022.02.11 |
12-4-1. 근친상간 (0) | 2022.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