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3-3. 생명체의 이중나선

이효범 2022. 2. 21. 07:49

13-3. 생명체의 이중 나선

 

생명 기계론은 생명체를 물질의 복합체로 간주하고,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 성분 물질들의 물성과 상호 작용의 결과가 생명 현상이라고 본다.

이런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는 자연 무생물계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과 똑같은 원소들이다. 물론 자연계에 존재하고 있는 100여 종의 원소 모두가 생명체에서 다 발견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 가운데 약 20종정도만이 거의 모든 생물체에 공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생물체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소위 생명 원소라는 것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생물체 안에서 이러한 원소들은 원소 그대로의 형태로도 존재하고, 또 두 가지 이상의 원소들이 모여 분자의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분자들은 일반 무생물계와 마찬가지로 무기물과 유기물의 두 가지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무기물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이 물이다. 대체로 생물체의 무게 가운데 약 75%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식물의 씨앗처럼 휴면기에는 1020% 가량의 물밖에 함유하지 않는 것도 있으나, 이런 씨앗도 움이 틀 때는 수분 함량이 80% 정도까지 올라가야 한다.

생물체에서 물이 이처럼 양적으로 다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의 물리 화학적 성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물은 이 지구상의 어떤 액체보다도 많은 종류의 물질을 녹일 수 있다. 따라서 물 속에서는 여러 가지 화학 반응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생명 현상은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의 물성物性의 종합적 소산이고 또 이 물질들의 화학 반응의 소산이다. 따라서 물이 생물체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음으로써 생명 현상의 근원인 화학 반응이 생명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원시 생명체는 원시 바다에서 일어난 무수히 많은 종류의 화학 반응의 결과이다. 이 바다라고 하는 거대한 화학 반응의 그릇이 지금은 세포라고 하는 극히 작은, 그러나 원시 바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화학 반응의 그릇으로 바뀐 것이다.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기물은 크게 나누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그리고 핵산의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4종의 유기 화합물 가운데 소위 정보 물질은 단백질과 핵산이다. 이 두 가지가 정보 물질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분자의 구성이 어떤 정보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신비는 단백질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단백질은 참으로 복잡한 생명의 기본 물질이다. 단백질을 염산 같은 강한 산과 함께 가열하면 조각조각 깨져서 아미노산이 생긴다. 단백질은 이런 20종의 아미노산이 수십 개 또는 수백 개가 연결된 분자인데, 이 연결 방식에는 무한히 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영어에서 26개의 알파벳이 서너 개 또는 길면 10여 개가 연결되어서 수많은 영어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단어 하나하나가 고유의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의 경우는 영어 단어와는 달리 아미노산이 10여 개가 아닌 수십 또는 수백 개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연결의 조합이 가능한 수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고, 이 무한히 많은 단백질 분자의 종류가 생명체의 모든 개체성, 즉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단백질이 다른 것은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와 돼지의 인슐린은 서로 다르고 양과 돼지도 조금 다르다. 그런데 인슐린의 A사슬의 N말단에서 8, 9, 10번째의 아미노산 부분은 인간과 돼지가 서로 같다. 또 생체의 산화 반응시 전자를 운반하는 호흡 요소인 치트크롬 C란 단백질은 대략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아미노산 배열은 사람과 원숭이는 단지 한 곳에서만 다르고 사람과 소 사이에는 10, 사람과 닭은 13, 그리고 사람과 효모균 사이에서는 44개소가 다르다. 이런 차이는 그 종의 계통 발생상의 차이와 비례한다고 생각된다.

화석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소는 공통의 조상에서 약 7000만 년 전에 나뉘어 진화되었다. 그 때문에 평균 700만 년에 한 곳씩 아미노산의 배열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계산된다. 다른 생물과도 같은 빈도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달라진 아미노산의 개수로부터 언제 인간과 나뉘어져 진화가 시작되었나 추정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사슬에 아미노산 분자가 배열하는데 그 배열 순서를 단백질의 1차 구조라고 한다. 1,000개 이상의 단백질의 1차 구조가 밝혀졌고 이들은 생물학적 진화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비슷한 단백질, 예를 들어 척추 동물의 헤모글로빈을 보면 1차 구조에 차이가 있다. 동물의 종이 서로 가까울수록 그 차이점은 적어진다. 따라서 비슷한 단백질의 1차 구조에 따라 종의 족보를 따져 볼 수 있다. 많은 펩티드 결합으로 줄 모양으로 배열하고 있는 아미노산 상호간의 입체적 배치로 만들어지는 나선 모양이 단백질의 2차 구조이고, 촘촘한 공간 구조로 개켜져서 공 같은 모양을 이룰 때 그것이 3차 구조이며, 전체 단백질의 입체적 모습을 나타낸다.

단백질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의 전체 형태를 형성하는 것은 자기 조직화 능력 덕분이다. 또한 단백질은 개켜진 사슬의 표면이 열쇠와 자물쇠처럼 서로 결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단백질은 스스로 집합하여 특정의 구조를 만든다. 우리는 1차 구조를 알면 고차적인 입체 구조와 세포 속의 기능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단백질이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고차 구조가 유지되어야 하며 생물의 여러 가지 구조가 만들어지는 기초에는 이런 고차 구조가 관계하고 있다.

생체에서 어떤 단백질이 합성되는가에 따라 세포나 조직의 종류와 성질이 결정되며, 그것은 다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유전자는 강한 산성을 띠고 있으며 살아 있는 세포핵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핵산이라고 불린다. 핵산은 매우 긴 사슬처럼 생긴 중합체이다. 화학적 단위 분자(단위체라고 부르는 분자)들이 결합한 것이 중합체이다. 핵산은 단위체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지는데, 이 단위체는 다섯 가지의 단위 분자에 의해 그 특징이 정해진다. 이 단위 분자들을 염기라고 부른다. 이 염기들은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및 우라실(U)이다.

인산염과 당은 교대로 이어져 DNA 사닥다리의 양쪽 기둥을 이루고, 그 사이에 염기가 발판처럼 걸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합쳐 뉴클레오티드라고 부른다. 뉴클레오티드는 인산염 집단과 결합함으로써 중합한다. 그 결과 폴리뉴클레오티드가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핵산이다. 그리고 세포핵의 염색체 유전자를 이루는 폴리뉴클레오티드가 디옥시리보핵산, 약자로 DNA이다.

유전의 실체는 DNA에 있고, DNA의 유전 정보는 일단 리보핵산인 RNA에 전사되어, 그것을 근간으로 하여 특정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DNARNA단백질이라는 도식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원리라고 하여 센트럴 도그마라고 한다. 1953년 왓슨J. D. Watson과 크릭F. H. Crick이 발견한 DNA 구조는 두 가닥의 폴리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져 있고, 폴리뉴클레오티드는 염기 AT, GC의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이 짝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상보성덕택이다. 상보성이란 퍼즐의 두 조각이 서로 합쳐지려는 성질을 말한다. 상보성은 짝짓기의 불가피한 특성을 설명해 준다.

공간에서 DNA는 이중 나선으로 존재한다. 유전 형질의 영속성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견고한 이 건조물 덕택이다. 그런데 이 이중 나선은 꼬여 있던 폴리뉴클레오티드 두 가닥이 풀리면서 마치 지퍼처럼 벌어질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DNA는 두 배로 증가할 수 있다. 이것을 복제라고 한다. 복제는 분열하는 세포에게 유전 형질을 전달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늘 함께 있던 짝과 헤어진 DNA 가닥은 AT, GC라는 영구 불변의 상보성에 따라 다른 새로운 가닥과 결합하여 두 개의 딸 이중 나선을 만든다.

이렇듯 A, T, G, C라는 4개의 철자에서 출발한 DNA는 그 자체가 하나의 암호화된 화학적 메시지가 된다. 이 메시지는 두 가닥 중 하나를 따라 읽혀진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전사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원본과 거의 일치하는(다만 우라실은 티민으로 대체됨) 유동적인 사본들을 만들어 내보낼 수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본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50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뉴클레오티드를 갖게 된다. 하나의 가닥으로만 이루어진 뉴클레오티드를 RNA(리보핵산)라고 부른다. RNA 중에는 전령 RNA’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낯선 분자 기관들에게 유전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기관들에서는 이 메시지를 세포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 형태로 번역한다. 이 과정을 번역이라고 한다.

단백질은 단위체 화학 분자(또는 아미노산)가 모여서 만들어진 중합체이다. 이 분자들은 특별히 전령 RNA에 의해 선택되고, 전령 RNA는 단백질을 합성하라는 암호를 전달한다. 이때 염기 A, U, G, C가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단백질과 핵산은 이와 같이 생명체의 개체성, 연속성, 다양성 등을 나타내는 정보 물질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으면서 중심 도그마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단백질은 생명체의 유형 무형의 모든 형질을 나타내고, 핵산은 이 형질(즉 단백질의 종류)을 나타내게 하는 설계도의 구실, 다시 말해 유전자의 구실을 가지고 있다. 핵산 분자 속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 순서에 의하여 단백질 분자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가 결정되고, 이 아미노산 배열 순서가 단백질 분자 자체의 입체 구조를 열역할적으로 가장 안정된 구조로 만들고 이 구조가 생명체의 형질이 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단백질 분자가 생명체의 형질을 나타낸다고 하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좋은 예가 겸상적혈구성 빈혈증(일명 낫세포 빈혈증)이다. 이 병은 적혈구의 모양이 정상인과는 달리 낫과 같고 모세 혈관에서 쉽게 파괴되어 그 결과 빈혈을 일으켜서 사람을 죽게 하는 유전병이다.

적혈구 속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들어 있어서 이것이 산소 운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상인과 이 병의 환자의 헤모글로빈을 분석해 본 결과 146개의 아미노산의 연결 순서 가운데 6번째의 아미노산만이 다를 뿐 양자가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정상인에게서는 이 6번째의 아미노산이 글루탐산인 데 반하여 환자에게서는 발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에서 단 하나의 아미노산이 바뀜으로써 치명적인 유전병이 생기는 것이다.

생명체의 유전 형질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는데, 이 많은 종류는 단백질의 종류가 무한히 많을 수 있으므로 단백질의 종류가 바로 형질의 종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즉 유전 형질)는 핵산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 순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현재 명백해졌고, 이 결정 과정도 소상히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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