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사바나 원칙
인간의 본성은 진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인간의 진화는 1만 년 전에 멈추었다. 왜냐하면 진화는 수많은 세대에 걸쳐 이루어지며, 하나의 종이 진화하는 속도는 그 종의 개체가 성적性的으로 성숙하는 데 드는 시간에 비례한다.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려면 아주 수많은 세대에 걸쳐 환경이 안정적이고 변화가 없어야 한다. 1만 년 전 농경사회 이후 인간은 자연선택이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환경 속에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인간은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프리카의 수렵채집인의 특질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유전적 진화가 일어난 기간의 99%는 수렵채집인을 존속시키는 쪽으로 선택압력이 작용했다. 그래서 남자는 사냥길에 오르면 지도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이 없이 도 며칠이고 몇 킬로미터고 동물을 쫓다가 집으로 돌이올 수 있는 시공간 인식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남성은 사냥의 최적기인 가을과 초겨울이 되면 야외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싱숭생숭해진다. 여자는 과실나무와 덤불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뒀다가 매년 열매를 거둘 시기가 되면, 지도라든가 붙박이 이정표 없이도 다시 거기를 찾아갈 수 있는 위치기억 능력이 형성되었다. 산에 들에 꽃이 피고 나물이 돋는 봄이 오면 채집생활 유전자가 남아 있는 여성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대니얼 크루거Daniel Kruger는 채집 활동에 관련된 쇼핑의 방식이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점을 밝혀냈다. 여자가 물건을 살 때는 모양과 스타일이 폭넓게 구색을 갖춘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고르는 것을 선호한다. 비싼 물건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 매장이 세일할 때 가서 산다. 어떤 물건 옆에 무엇이 있었는지 잘 눈여겨봄으로써 그 물건의 위치를 기억한다. 반면에 남자는, 작은 것들을 여러 개 사러가기보다는 오디오나 컴퓨터처럼 큰 것을 하나 사러갈 때 기분이 더 좋다. 큰 걸 사러 갈 때는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 원하는 물건을 산 다음에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낯선 쇼핑센터에 들어왔을 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계속 확인한다.
남자와 여자의 행동의 차이를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남자는 텔레비전 리모콘을 장악하고 자기 마음대로 채널을 휙휙 바꾼다. 여자는 채널을 잘 바꾸지 않고 광고를 보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남자는 열을 받으면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남의 나라로 쳐들어 갈 것이다. 반면 열받은 여자는 초콜릿을 먹거나 아니면 쇼핑센터로 쳐들어간다. 여자는 남자들이 둔탁하고, 무심하고, 배려할 줄 모르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비난한다. 또 따뜻하고 동정적인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한다. 말도 잘 하지 못하고, 충분한 애정 표시도 없고, 인간관계에 민감하지도 못하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계속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동물적인 섹스나 하려 든다고 비난한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변기 뚜껑을 세워놓은 채 나오기가 일쑤다. 남자는 여자들의 형편없는 운전 실력을 비난한다. 도로 안내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도를 거꾸로 들고 읽고, 도무지 방향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본론은 온데간데없는 수다를 한없이 늘어놓는가 하면, 한 번도 먼저 섹스를 하자고 요청하는 적도 없고 또 화장실에서 나올 때면 늘 변기 뚜껑을 덮어놓은 채 나온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물건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서도 CD는 알파벳 순서로 정리한다. 여자들은 갑자기 사라진 자동차 열쇠 꾸러미는 잘 찾으면서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이런 인간의 행동이나 남녀의 차이는 인류의 조상이 1만 년 이상 아프리카 사바나의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을 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사바나 원칙(Savanna Principle)’이 존재한다. 즉 인간의 진화가 아프리카의 대초원인 사바나 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는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와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특수적 심리기제로서 ‘일반지능’을 진화시켰다. 결국 지능이 뛰어날수록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을 지지하고 빨리 적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능이 뛰어날수록 결혼이나 육아 같은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에 취약하다. 미국 수학영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참가자 중 33세 남성의 64.9%, 여성의 69%가 아이가 없었다. 이것은 미국의 30-34세의 남녀 중 26.4%가 아이가 없음과 비교해 볼 때 극히 비정상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런 것들을 지능의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지능이 높을수록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 진보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바나에서 동족으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 속에서 살았고, 동족 외 낯선 사람에겐 이타적이지 않았다. 즉 더 많은 세금과 소득 이전을 통해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는 조상의 패턴에 비추어보면 새로운 것이다. 미국 종합사회조사 통계에는, 자신이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한 20대 초반 청년들의 IQ가 평균 94.82인 반면에, ‘아주 진보적’이라 생각한 청년들의 IQ는 106.42였다.
이렇게 만약 진보주의자가 지능이 높다면, 어째서 바보 같은 말을 해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더 많아 보일까? 진보주의자 같이 지능이 높은(intelligent) 사람일수록 일상적응력은 더욱 부족해진다. 그래서 바보(stupid) 같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반면에 보수주의자 같이 지능이 낮은(unintelligent) 사람일수록 실용적인 상식을 가지고 똑똑할(smart)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래서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낮은 사람보다 진화적으로 새로운 인간유형 즉 동성애자, 무신론자, 채식주의자일 가능성이 높고,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며, 술이나 마약, 담배를 즐기고, 결혼이나 출산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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