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AQAL
윌버 사상의 기본 토대는 4분의(quadrants), 수준(levels) 또는 단계(stages), 라인(lines), 상태(states), 타입(types)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
4분의는 앞에서 설명되었듯이 좌상, 좌하, 우상, 우하의 4개의 분의로 나누어진다. 좌-상 4분의는 개인적인 내면이자 의식의 주관적 측면 혹은 개인적 의식을 나타낸다. 우-상 4분의는 의식의 내적 상태에 대한 객관적 또는 외면적 상관물을 나타낸다. 좌-하 4분의는 집단의 내면이며 개인으로 구성된 모든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 의미, 세계관, 윤리를 나타낸다. 우-하 4분위는 집단의 내면 상태에 대한 외면적이고 물질적이며 제도적인 측면을 나타낸다.
수준은 의식의 모든 발달 수준을 의미한다. 윌버는 영원의 철학 혹은 세계의 위대한 영적 전통을 받아들여 인간은 전개인, 개인, 초개인 상태에 이르는 의식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개인영역에서 초개인 영역에 이르는 의식의 발달을 설명한 점에서는 뛰어나지만, 전개인 단계에서 개인단계라는 초기발달에 대한 이해는 매우 빈약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윌버는 피아제나 프로이트 등 서양 심리학을 보충해서 인간 의식의 총체적 발달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그것이 바로 감각신체적, 환상적-정서적, 표상적 마음, 규칙/역할 마음. 형식적-반성적 마음, 비전-논리, 심령적, 정묘, 시원, 비이원적 단계라는 10단계이다. 의식은 이런 10단계를 거쳐 진화하는 과정에서 분열되고 왜곡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 소외된 병리 현상은 고착 지점 혹은 자각의 상처로 남아 있거나 분열되거나 회피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기법을 통해 치료됨으로써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모든 발달의 단계를 초월하고 포함하면서 최고의 단계인 비이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 상태는 다양하다. 세계의 위대한 지혜 전통에서는 인간의 자연적인 의식 상태를 3가지로 나눈다. 깨어 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꿈 없는 깊은 잠 상태가 그것이다. 3가지 의식 상태는 그것에 상응하는 몸을 갖고 있다. 밀도가 높은 몸(gross body), 정묘한 몸(subtle body), 원인이 되는 몸(causal body)이 그것이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말하는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은 발달라인을 나타낸다. 인간은 인식지능, 정서적 지능, 음악적 지능, 운동감각 지능 등 다양한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두 가지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다른 면의 지능은 빈약하다. “그런데 이런 것을 발달 라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 각 지능이 저마다의 성장과 발달 정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진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전개된다.”
사람을 남성 타입과 여성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남성 원리는 행동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 원리는 교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또는 사람을 칼 융처럼 감정유형, 사고유형, 감각유형, 직관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타입은 모든 단계나 상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로 구성된 모델(지도)을 켄 윌버는 ‘통합모델‘이라고 부르고 그는 이 모델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통합모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간단하게 줄여서 ‘모든 4분의(all quadrants), 모든 수준(all levels)’ 또는 AQAL이라고 부른다.
켄 윌버는 인간을 보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AQAL로 보아야 전체와 부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과학이 이룬 성과에 압도되어, 감각을 바탕으로 한 유물론적 과학이 우리의 모든 인식과 지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식은 오직 행동이나 뇌처럼 관찰 가능한 것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가장 첨단적인 인지과학은, 의식을 그 객관적인 차원인 신경기전 및 생체 컴퓨터와 같은 기능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이런 과학의 독백적 응시, 아름다움도 풍요로움도 찾아볼 수 없는 평원(flatland) 속에서 결국 인간은 온 우주의 다차원적인 하모니를 잃어버리고, 물질적 우주의 단조로운 멜로디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하강시켜 품위도 없는 단지 물질적 파편으로 축소시킨 것이다. 윌버는 이런 현대 인간의 슬픈 자화상을 파괴하고, 본래부터 인간 속에 간직하고 있던 인간의 영성靈性을 회복시켜, 인간을 다시 우주와 합일시키려고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탁월한 통합사상가라고 볼 수 있다.
■더 읽을거리
▪켄 윌버, 『Sex, Ecology, Spirituality: The Spirit of Evolution』, 1995.
▪켄 윌버, 『The Eye of Spirit : An Integral Vision for a World Gone Slightly Mad』, 1997.
▪켄 윌버, 김철수역, 『무경계』, 정신세계사. 2012.
▪켄 윌버, 조옥경역, 『통합심리학』, 학지사, 2008.
▪켄 윌버, 정창영역, 『켄 윌버의 통합비전』, 김영사, 2014.
▪켄 윌버, 김명권·민회준공역, 『모든 것의 이론』, 학지사, 2015.
▪켄 윌버, 김명권·민회준공역, 『켄 윌버의 일기』, 학지사, 2010.
▪이븐 알렉산더, 고미라역, 『나는 천국을 보았다』, 김영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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