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5-3. 자본주의의 정신

이효범 2021. 12. 8. 07:11

5-3. 자본주의의 정신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베버는 그것이 영리욕이나 최대한의 이윤 추구가 아니고, 근대 자본주의, 특히 그 토대를 구성하는 산업 경영과 그 합리적 조직을 제일 먼저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자본가, 노동자를 막론하고 모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특유한 에토스, 즉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 에토스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그는 독일의 사회학자 좀바르트Werner Sombart와도 다르다.

좀바르트는 ?현대자본주의Der moderne Kapitalismus?에서 중세의 권위주의 사상이 붕괴되고 인생관이 세속화되면서 의식이 영원한 것에서 현세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식을 그는 파우스트Faust적 의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표현에 따르면 멀리 그리고 드높이 날고자 하는 삶의 감정이 분명히 괴테의 파우스트 독백이 증기 기관차의 청춘 속에 표현하고 있는 감정이다. 끝을 모르고 술취한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한없이 날고 싶어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수가 술취한 영혼을 끝없이 멀고 먼 세계로 밀어내는 의식이다. 좀바르트는 파우스트처럼 인간이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근대인의 의식이 시장 제도와 결부되어 경제 제도의 변혁이 일어나고, 이것은 전통적인 수요 충족의 제도를 영리 추구의 제도로 변화시켜 자본주의 사회를 가져왔다고 진단한다. 이 점에 반해 베버는 영리 추구가 자본주의와 동시에 잉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인류에게 저주스런 황금욕(영리 추구)은 태고적으로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자본주의를 잉태시킨 필요 충분 조건은 아니다. 그러므로 근대 자본주의의 원인은 단순한 영리 추구가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합리적인 영리 추구라는 것이다.

 

A) 그러면 먼저 자본주의의 정신의 담당자가 노동자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베버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슐레지엔의 농업 노동자를 예로 든다. 공업 경영과 농업 경영은 어느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의 집약도를 높이기도 하고 시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농업 노동의 경우에는 농산물 수확기가 그 경우이다. 일정 기간 동안에 수확물을 모두 거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때 기업가가 취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자들은 심리적인 자극을 받아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오랜 시간 노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그 당시 영국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슐레지엔의 농장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임금의 실질 수입이 2배로 증가하면 슐레지엔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2일 중 하루를 쉰다.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면 그 다음에는 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왜 영국의 노동자들과 다른가?

베버는 그들의 윤리 관념이 영국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그들은 전통주의라는 에토스를 가졌기 때문이다. 전통주의란 선조나 부모들이 그렇게 살아왔으며 자신들도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온 양태를 과거에도 있었고 또는 과거에도 행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장래의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삼으려는 윤리를 말한다. 베버는 이것을 괴테의 영원한 여성적인 것이라는 말을 이용하여 영원한 어제적인 것(das ewig Gestrige)이라고 풍자한다.

이런 전통주의의 에토스를 몸에 익힌 노동자는 만약 임금이 2배로 증가하면 지금까지의 생활비의 2일분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음날 쉬게 된다. 전통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을 탐내지 않는 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노동자가 임금 인상에 따라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다면,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좋지 않은 노예 근성의 소유자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영국 노동자들은 이와 반대로 도덕적으로 성실하면 임금 인상에 응하여 척척 일하고, 도덕적으로 단정하지 못하면 다음날 쉬게 된다.

베버의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의 대부분이 이러한 전통주의에 따라 살아간다면, 근대의 합리적 산업 경영은 발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산업 경영이란 합리적인 예측과 계획 위에 수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의 출결이 일정하지 않다면 합리적인 예측은 어려워지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베버는 또 노동자에게서 보여지는 전통주의적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공업 조사의 사례도 열거하고 있다. 독일 어느 지방의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동 양식이나 도구 혹은 기계를 노동 과정에 도입할 경우 거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 노동자의 주요 부분은 중세 말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합리적 산업 경영 건설에 좋은 촉진제가 되는 에토스를 이미 일반적으로 몸에 익혀 왔다. 따라서 베버는 바로 이 에토스를 자본주의의 정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B)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의 담당자가 자본가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베버는 영국이나 미국, 한층 더 넓게는 서유럽 국가들에서처럼, 역사적으로 근대에 들어서서 합리적인 산업 경영을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자생적으로 자신의 내부로부터 형성되는 나라의 경우에는 봉건 사회가 붕괴되면서 공업 생산자들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 공업 생산자들이 도시 지역으로부터 농촌 지대로 점차 이동해 간다. 이것이 이른바 중산적 생산자층이다. 그 중산적 생산자층의 상층부가 자본가 내지 산업 기업가의 중추 부분을 형성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이 임금 노동자의 중추 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자본가나 산업 기업가들은 옛부터 존재해 왔던 상인이나 금융업자들에 대항하고 타도하면서 성장해 갔다.

중산적 생산자층은 기존의 상인이나 금융업자들과는 달리 수중에 축적되어 있는 자금을 투기적인 상업에 투자하지 않고 견실한 산업 경영에 계속적으로 투자했다. ?로빈슨 크루소 표류기?의 로빈슨이 젊은 시절 투기적인 상업에 의한 이윤에 반대하는 부친의 훈계를 듣지 않고 해외로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상징하듯이,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중산적 생산자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그러한 투기적인 무역에 투자하여 일확천금을 쥐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이러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그저 적정 이윤만 있어도 또는 그보다 이윤이 더 적더라도 자금을 산업 투자로 돌리는 방향으로 그들을 내면으로 추동시킨 에토스가, 베버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베버에 따르면 중소 산업 경영자, 즉 소경영자들이 자본주의의 정신의 최초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정신은 곧바로 자본가를 담당자로하는 정신이라기보다는 소부르주아적인 소경영자들을 충동질하는 정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탐욕의 정신이 아니라 세속적 금욕世俗的禁慾의 정신이다.

'인간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5-5. 합리화  (0) 2021.12.09
5-4.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0) 2021.12.09
5-2. 루오 브렌티노의 비판  (0) 2021.12.07
5. 막스 베버의 인간론  (0) 2021.12.06
4-2-4. 인간에 대한 부정과 긍정  (0)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