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8. 알도 레오폴드)
알도 래오폴드(Aldo Leopold)는 생태중심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1933년 생태계를 되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조렵수(狩獵數)의 관리 방법에 관한 책을 썼다. 『수렵조수관리(Game Management)』가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관리 여하에 따라서 야생의 새와 동물의 개체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줌으로써, 자연보호를 위한 과학의 기초 구조를 보여주는 실용서적이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수렵 조수를 관리하면, 야생지에서 우리 자신을 퇴거하지 않고도 야생동물을 잘 보호할 수 있다. 이런 조수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레오폴드의 유고가 출판되었다.『모래땅의 사계(A Sand County Almanac)』가 그것이다. 이 유고집의 한 장으로 ‘대지윤리(land Ethic)’가 나온다. 이것은 생태중심환경윤리에 대한 체계적인 최초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레오폴드는 자연(야생)에 대해서 루소(Jean-Jacque Rousseau),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의 전통을 잇는다. 루소는 완전하고 선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에머슨은 미국 낭만주의 자연관의 대표이자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중심인물이다. 그는 우주는 자연과 영으로 이루어졌으며, 나와 남, 자연과 인공,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근거로 신과의 영적인 결합을 추구했다. 모든 사람은 창조주의 목적이 담긴 자연의 계시를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월든(Walden)』을 쓴 소로우는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은 문명의 온갖 허구와 가식으로부터 자연의 일부인 참된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흐드득흐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이었다. (---)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런 전통 속에서 레오폴드는 대지윤리에서, 기존의 인간 중심 윤리를 땅, 식물, 동물도 포함하도록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개체는 상호의존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어느 날 떡갈나무가 벼락을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장작으로 사용되며 다른 일부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불에 탄 장작도 결국 재가 되어 대지도 돌아간다. 이것이 다시 식물의 양분으로 작용하여 사과로 변형되며 이 사과를 다람쥐가 먹는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떡갈나무는 죽어서도 생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지니며 다른 여러 종들에게 혜택을 준다. 이처럼 생물 공동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상호의존적으로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대지 윤리는 이 공동체의 범위를 토양, 물, 식물과 동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윤리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로 확장하고, 다시 인간과 대지 간의 관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 무리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총이 비었을 때 늑대는 쓰러졌고, 새끼 한 마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돌무더기를 향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고 있었다. 늙은 늑대에게 다가간 우리는 때마침 그의 눈에서 꺼져가는 맹렬한 초록빛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눈 속에서,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오직 늑대와 산이 알고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늑대가 적어진다는 것은 곧 사슴이 많아진다는 걸 뜻하기 때문에, 늑대가 없는 곳은 사냥꾼의 천국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초록빛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본 뒤, 나는 늑대도, 산도 그런 생각에 찬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는 인간을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 생명공동체(biotic community)의 구성원으로 본다. “대지윤리는 인류의 역할을 대지 공동체의 정복자에서 그것의 평범한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변하시킨다. 대지윤리는 인류의 동료 구성원에 대한 존중,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존중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 인간이 사실상 생명 공동체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를 생태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활동으로서만 설명되어온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실제로는 사람과 땅의 생명적 상호작용이었다.” 그리고 도덕적 지위를 부여 받는 것은 대지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수많은 먹이 사슬을 매개로 긴밀한 상호의존 체계 하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지는 집합체를 말한다. 개별 구성원들은 집합체의 자원이다. 중요한 것은 개체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이다. 그래서 생명공동체의 온존함(통합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특징을 보존하는 인간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은(right) 행위이다. 그 반대면 그른(wrong) 행위이다.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은 어떤 행위가 쾌락을 증진하면 옳고, 고통을 증진하면 그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오폴드는 이 기준을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서 대지의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바람직한 대지 이용을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 모든 물음을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의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하라.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르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는 윤리적 전체주의이다. 그래서 이 입장은 원자론과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영미도덕철학 주류와 대립한다. 윤리적 전체주의는 생태적 전체의 형이상학적 실재성을 인정하고, 생태계의 안정과 건강을 위해서는 개체의 희생을 용인한다. 이런 레오폴드의 윤리를 계승하고 철학적으로 체계화 시킨 학자가 캘리코트(Baird Callicott)이다. 그래서 영미도덕철학의 주류의 전통에 있는 톰 레건은 캘리코트의 입장이 환경파시즘(environmental fascism), 생태파시즘(eco-fascism)을 함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갤리코트의 전체론적 입장에 따르면 환경 파괴의 원융은 인간이 되므로,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서는 대량적인 인간사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캘리코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전체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에 기초하여 수정된 전체론을 전개한다. 생명공동체는 더 이상 도덕의 중심이 아니다. 또한 생명공동체의 통합성, 안정성, 아름다움만이 더 이상 선의 기준이 아니다. 동심원을 그려나가듯이, 인간 공동체가 가장 중심에 놓이고, 그 다음에 인간과 가축이나 재배식물들로 구성된 ‘보금자리 공동체(nested community)’인 혼합공동체가 있으며, 그 너머에 생명공동체(야생 생태계와 종 공동체)가 존재한다. 윤리의 일차적 원리들(생명공동체의 통합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전하라)이 서로 충돌할 경우, 원리들 사이의 우선성을 인정(이차적 원리)한다. 자신과 친숙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그렇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선행한다. 강한 이익관심에 의해 생기는 의무가 약한 이익관심에 의해 생기는 의무에 선행한다. 캘리코트는 기본적으로 전체론의 입장을 지키되, 무차별적으로 생명공동체의 보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와 자연의 다른 존재들의 이익관심을 고려하는, 수정된 전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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