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66, 빗금의 사랑)
o 빗금의 사랑
구녕 이효범
이를테면 산은 더 안전하기 위해 수평으로 눕거나
자신의 위용을 더 뽐내기 위해 수직으로 곧추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은 어린 나무를 더 받아들이기 위해
삼각형의 빗변처럼 기울어져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 캄포 광장이나
파리의 퐁피두 센터 광장도 그렇다.
지친 다리를 쉬고 누워 멍해지라고 빗금이 권한다.
그 때 그리운 사람이 불쑥 걸어 들어온다.
볼펜 잉크가 다 떨어지도록 쓰고 싶은 인생과 여행 이야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알리라.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실은 얼마나 만만하지 않은 지를.
결국 언젠가 떠나는 이를 위해
말없이 자리를 펴주는 빗금의 황금 경사를.
지중해의 피타고라스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빗금에도 사랑이 있음을
그래서 그는 하얀 수탉을 만지지 못하게 하였다.
후기:
내 연구실 서편으로 자그마한 동산이 있습니다. 나는 일찍 출근하여 이효범연구실에서 쓸데 없이 고민하다가, 혼자 쓸쓸히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그냥 연구실로 돌아가는 것은, 젊지 않은 이 나이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 동산을 지나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방축천으로 갑니다. 오늘 나는 연두색으로 물든 그 산을 오르다가 문득 빗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빗금에 거주하는 수많은 나무와 풀을 보면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 빗금의 발견은 아마 고대 피타고라스가 경험한 유레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어느 웅장한 사원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무심코 바닥에 깔려 있는 대리석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를 보다가, 직각삼각형의 세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작은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이 나머지 한 개의 큰 정사각형의 넓이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신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라고 기뻐하며, 황소 100마리를 잡아 신에게 공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나는 피타고라스처럼 황소 100마리를 잡아 공물로 바칠 수 있는 부자가 아닙니다. 세종에 사는 가난한 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 때문에, 여기 시 한 수로 대신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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