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6. 톰 레건)
톰 레건(Tom Regan)은 권리론에 기초하여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즉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동물이 갖고 있는 윤리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동물의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 이외에 동물도 도덕적 지위와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인간도 처음부터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권리는 일종의 투쟁의 산물로서 끝없이 확장되었다. 영국귀족은 1215년 마그나카르타에 의해 권리가 인정되었고, 아메리카 이주민은 1776년 미국독립선언에 의해 영국인과 동등하게 인정되었다. 미국의 경우 노예는1863년 해방선언, 여성은 1920년 헌법개정 13조, 아메리카 원주민은 1924년 인디언 시민권법, 노동자는 1938년 공정노동 기준법, 흑인은 1957년 공민권법에 의해 비로소 권리가 인정되었다. 자연에 처음으로 권리가 적용된 것은 1973년 절멸위험종 보호법이다.
레건은 동물도 고유의 가치(inherent value)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도구적 가치와 다르게, 다른 사람의 이익관심과 욕구, 사용과 무관하게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칸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칸트와는 달리, 고유의 가치를 갖는 것이 자율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아와 정신지체아, 또는 혼수상태의 인간처럼 도덕적 무능력자(moral patients)들은 자율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도, 도덕적 지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레건은 이런 기준 대신에 그가 생각한 새로운 기준인 ‘삶의 주체(subject –of-a-life)’라면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본다. 그러면 삶의 주체란 무엇인가? “삶의 주체라는 것은 단지 살아 있다는 것, 또는 단지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믿음, 욕구, 지각, 기억, 자신의 미래를 포함해서 미래에 대한 의식, 쾌락과 고통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즉 선호와 복지에 대한 이익관심, 자기의 욕구와 목표를 위해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순간순간의 시간을 넘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고, 타자와는 별개로 자신의 삶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복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레건은 이런 고유의 가치를 갖는 모든 개체는 그의 가치에 걸맞게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대우해주는 것이 정의(正義)이다. 그러므로 레건이 말하는 정의는 존중의 원리(respect principle)를 기초로 하는 평등주의적(egalitarian) 정의이다. 그러나 레건이 주장하는 정의 즉,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도 도덕적 지위와 도덕적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학자들마다 입장이 다르다. 오히려 전통적 견해는 생각하고 추론하는 지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만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자연물에게는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전통에서 차차 도덕적 지위를 갖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견해가 나타났다.
조엘 화인버그(Joel Feinberg)는 라는 논문에서, 어떤 것이 권리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이익관심(interests)을 가져야 하며 권리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나름의 선과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물들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 증진되거나 손상될 수 있는 이익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동물은 권리를 가지며, 우리는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 역시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학대당하지 않는 것이 개의 이익관심이고 학대당하지 않는 것이 개에게 좋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은 개를 학대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화인버그는 의식적 욕구, 희망 또는 충동, 무의식적 욕망, 목표, 목적, 잠재성향 등을 가진 존재만이 이익관심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등동물은 해충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고등동물은 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은 인지능력이 없기 때문에 권리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크리스토퍼 스톤(Christoper Stone)은 한 때는 토지를 소유한 백인 성인 남자만이 완전한 법적 권리를 가졌지만 그 이후 땅을 소유하지 않은 남자, 여자, 흑인, 인디언 등으로 권리가 확대되었듯이, 권리 개념도 변화하고 발전되어왔다고 말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권리가 정부 조직에 의해 승인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1) 스스로 법적 행위(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2) 법적 구제 여부를 결정할 때 그것에 대한 손실을 법정이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3) 법적 구제를 통해 그것이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스톤은 혼수상태의 사람이 법적 후견인을 두고, 또 무생물인 법인이 신탁위원회를 가질 수 있듯이, 산림이나 시냇물이나 산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임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법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고 봄으로써 (1)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동차 사고로 인해 손상된 건강을 회복하는데 드는 비용을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듯이, 소송대리인이 책임당사자에게 자연물이 건강을 회복하는데 드는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2)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폴 테일러(Paul Taylor)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이해되는 도덕적 권리의 개념은 다음의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성립한다고 말한다. (1) 도덕적 권리의 소유자는 도덕 행위자들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추정되어야 한다. (2) 도덕적 권리의 소유자가 되는 것과 자존심을 갖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어떤 존재가 자존심을 갖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 도덕적 권리의 소유자가 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3) 어떤 존재가 권리를 선택하거나 행사하는 것 또는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이치에 닿아야 한다. (4) 도덕적 권리의 소유자는 자신의 그 권리에 의해 제2순위의 권리도 갖는다. 도덕적 권리의 개념을 이대로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동식물은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테일러는 도덕적 권리의 개념을 확대하고 수정하면 동식물도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자연 존중의 태도 하에 생명체를 내재적 존엄성(inherent worth)의 소유자로 간주하게 될 때, 동식물은 도덕적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 유아, 정신병자, 심각한 정신지체자들과 같이, 동식물 역시 도덕 행위자에 의해 옳거나 부당하게 다뤄질 수 있는 자기 고유의 선을 갖고 있기에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식물에게 법적 권리가 주어질 때, 동식물의 선은 동식물로 하여금 법적으로 유효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람들은 그 청구권의 합법성을 승인하도록 법에 따라 요구 받는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동식물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인간의 권리에 대한 존중만큼의 동등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동식물이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동식물을 옳거나 부당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동식물의 이익과 선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식물은 자신들의 고유한 이익과 선을 고려 받을 만한 내재적 존엄성을 소유하고 있고, 인간은 그 점을 고려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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