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환경에 대하여, 5. 피터 싱어)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젊은 나이에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이라는 책을 써서 일약 실천윤리학 분야에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는 벤담의 영향을 받은 공리주의자이다. 벤담처럼 싱어에 의하면 도덕적 고려의 기준으로 중요한 것은 이성을 갖는 것이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유정적 (有情性, sentience) 존재만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그리고 공리주의의 입장처럼 쾌락과 고통의 양이 도덕적인 것을 결정한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동물에 대한 인간의 행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식생활, 동물들의 사육 방식, 과학에서의 시험 절차, 야생 동물의 사냥, 모피, 서커스와 로데오, 동물원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문제이다.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에게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태도가 변한다면 동물의 고통의 양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싱어는 도덕의 기본원칙을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으로 잡는다. “윤리적 판단이 보편적 관점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익(interests)이 단지 그것이 나의 이익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이익이 돌보아져야 한다는 나의 아주 자연스런 관심은, 내가 윤리적으로 사고하는 한, 다른 사람의 이익에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만이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평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원칙은 인간 종의 구성원이 아닌 존재들에게도 똑같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벤담처럼, 그의 생김새나 능력 등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냐 동물이냐를 떠나 도덕적 지위를 갖는 존재는 모두 하나로 계산되어야지, 그 이상이나 이하로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도덕적 원칙으로 볼 때, 도덕적 고려 대상에서 동물을 제외하는 것은 옛날에 도덕적 고려에서 여성과 흑인을 제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성차별주의이다. 흑인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을 차별하는 것은 종차별주의(speciesism)이다. 이 모든 차별의 유사점은, 우세한 그룹이 자신의 그룹의 외부적 존재들을 자신의 그룹의 이익이 되도록 다루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이들 외부 존재들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평가 절하한다. 외부 존재들의 이해관계는 내부자들의 이해관계만큼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이다.
싱어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에서 종차별주의의 문제점을 다시 지적한다. “비록 대부분의 인간들은 추론이나 그 외의 지적인 능력에서 동물보다 탁월하지만, 그런 차이는 우리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갈라놓은 선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기나 심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동물보다 지적으로 열등한 능력을 갖지만, 성품이 안전하지를 검사하기 위해 고통이 지속되는 죽음을 그들에게 가하자고 우리에게 제한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나 심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조그만 우리에 가두고 그들을 식용으로 쓰기 위해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p.160.) 그러므로 싱어는 인간의 도덕적 삶을 이야기할 때 고통을 느끼는 어떤 존재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결론한다. 인간이 동일한 인간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줄여주기 위해 자신의 소유와 시간을 헌신한다고 해도, 자신의 주위에 있는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 결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동물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까? 그는 산업화된 사회의 시민들은 동물의 고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적합한 음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곡물을 동물에게 먹일 때 단지 영양가의 10% 정도만 고기로 남게 된다. 그래서 곡물을 심기에 부적합한 방목지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물을 먹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식량 증산을 위해서도 적합하지 않다. 또한 동물 고기를 먹는 인간의 이익이 먹혀지는 동물의 생명과 복지보다 더 중시되는 것은,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또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사먹을 수 있는 가격으로 식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서 동물들을 평생 동안 답답하고 부적합한 환경 속에 감금하는 육류 생산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공장식 농장에서 길러지는 고기를 사먹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싱어는 더 나아간다. 사람들은 모든 동물 시험이 중요한 의학적 목표에 기여하고 있으며, 실험에 의해 산출되는 고통보다 삭감되는 고통이 더욱 크기 때문에 실험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 실험에서 인간의 이익이란 없거나 매우 불확실한 반면, 다른 종의 구성원들이 잃게 되는 것은 확실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실험대상으로서의 동물 이용은 금지되어야 한다.
싱어는 우리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권한다.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 아닌 동물들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계속 먹을거리로 삼을 수는 없다.” “ 단지 어떤 특정 유형의 음식으로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생물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면, 이때 그 생물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 이상이 될 수는 없다.” “평생을 새장에 처박혀 지내는 암탉이 낳은 달걀을 계속 먹으면서 또는 어미로부터 떨어져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음껏 다리를 뻗고 누워 볼 자유마저 박탈당한 송아지 고기를 계속 먹어대면서, 스페인의 투우, 한국의 보신탕, 또는 캐나다의 새끼 물개 도살을 반대하는 것은, 집을 흑인에게 팔지 말라고 이웃에게 말하면서 남아프리카의 인종 차별을 비난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싱어는 짐 메이슨과 함께 『죽음의 밥상(The Ethics of What We Eat: Why Our Food Choices Matter?)』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세 가족 즉 전형적인 마트 쇼핑과 육가공식품 애호 가족, 유기농 식품과 해산물을 주로 먹는 선택적 잡식주의 가족, 완전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생각하는 식단 가족을 비판적으로 숙고하면서, 먹을거리에 관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원칙을 구성한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투명성: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권리가 있다.
(2) 공정성: 식품 생산의 비용을 다른 쪽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3) 인도주의: 중요하지 않는 이유로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잘못이다.
(4) 사회적 책임: 노동자들은 타당한 임금과 작업 조건을 보장받아야 한다.
(5) 필요성: 생명과 건강의 유지는 다른 욕망보다 정당하다.
저자들은 먹을거리에 대한 이런 윤리적 원칙들을 제시하지만 광신은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윤리적으로 먹자고 하는 것이, 종교의 엄격한 계율이거나 유태인들의 음식금기와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하면 개인이 원칙을 얼마나 엄격하게 지키는 지가 핵심이 아니라 동물학대를 지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우리는 동물들을 집단적으로 도살하거나 생매장한다. 우리가 그런 돼지의 입장이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돼지도 사람처럼 꿈을 꾸고, 색깔을 구별하며, 은은한 달빛에 ‘노래’로 화답하는 정서적 동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도널드 브룸 박사는 돼지가 자기 인식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코비드19로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되어 집단으로 버려진다면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는가? 동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고통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싱어가 권하는 채식주의를 진지하게 한번쯤은 고려해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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