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2(파리)

이효범 2024. 4. 15. 10:33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파리)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파리)

 

구녕 이효범

 

인천국제공항에서 파리 샤를 드골 공항까지는 14시간이 걸렸다. 기내식을 두 번 먹고, 한참을 자고, 3편의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간식을 먹었으나 시간이 너무 남는다. 이제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14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다. 공항에 내리니 13일 저녁 6시경이 되었다. 외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늘 아내에게 지적받는 일이지만, 꼼꼼하지 못한 나는 큰 여행의 그림만 그릴뿐, 미리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니냐고 변명은 하지만, 당황하고 실수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나는 파리 드골 공항- 몽파르나스역- 보르도- 바욘- 생장피에드포르라는 일정만 머릿속에 넣었을 뿐, 그 지점들을 잇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알아보지 않았다. 공항에 내리니 당장 몽파르나스역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한국말도 모르는 여행객이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 청량리역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가는 방법도 모르고, 지도도 전혀 없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장애로 부딪쳐 온다. (옛날 대학에 있을 때처럼 조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하)

 

최근의 발달된 앱을 사용할 줄 모르는 나는 모든 것을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항 3터미널에 긴장하며 와서, 안내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기계로 몽파르나스역까지 가는 표를 11.8유로에 끊었다(사람이 표파는 곳은 없다), 그런데 막상 승강장에 내려오니 어떤 지하철을 타야 할지 막막하다. 노선역이 머리 위 화면에 가득 뜨는데, 화면이 빨리 바뀌기도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몽파르나스역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주위를 들러보고 가장 예쁜 여인에게 가서 물었다. 친절한 그 중년 여인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 노선을 한번 무사히 갈아타고, 역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막차가 벌써 떠난 것이다. 무섭고 비싼 파리 숙막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하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호텔을 찾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역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다시 20대 대학생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별 세 개 짜리 호텔이 가니 방은 있는데, 160유로하고 한다. 아무리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해도(공무원연금) 순례자에게는 과한 금액이다. 그 옆의 호텔에 갔다. 방이 없다고 한다. 다시 역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위험해 보이지만 허름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120유로의 방을 잡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현찰을 요구한다. 내가 머뭇거리니 건물 옆에 현찰 뽑는 기계가 있다고 친절하게 웃으며 가르쳐준다.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고장인가 하고 물었더니, 수동으로 겉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한다. 225kg, 3인승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나 혼자 타기에도 좁다.

 

방에 들어오니 안심이다. 거울이 보니 양 눈이 빨갛다. 영화를 가까이에서 3편이나 본 것이 원인이지 싶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가야 하나? 집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게, 오늘 돈도 많이 썼는데 망설여진다. (2024, 413(현지 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