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 (인천국제공항)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 (인천국제공항)
구녕 이효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 70을 넘어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걷는다고 집을 나선다, 남들은 밖에 있다가도 집에 들어올 나이에, 돈키호테처럼 돈키호테의 나라에 가겠다고 만용을 부린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e- de- Port)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두 발로 걸을 예정이다. 800Km, 이천리 길이다.
나는 왜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이 길을 걸으려고 하는 것일까? 서역으로 불법을 구하려고 간 혜초는 20대의 청년이었다. ‘열하일기’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박지원은, 40대 장년일 때 청나라 열하까지 여행하였다.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고 실패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의 나이는 68세였다. 공자가 졸할 나이에,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소크라테스가 이미 감옥에서 독배를 마신 이후에, 도대체 나는 철부지처럼 무엇을 찾자고 길을 떠나는 것일까?
인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인생을 네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學生期로, 스승의 집에 살면서 베다와 그 밖의 성전을 배운다. 이 시기가 끝나면 家主期인데,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 이렇게 살다가 사내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면, 아버지는 가산을 아들에게 남겨주고 숲속에 들어가 검소한 종교 생활을 한다. 이때 아내는 아들에게 맡겨도 되고 또는 함께 숲속에 데리고 갈 수도 있다. 이것이 林住期이다. 그리고 네 번째 遊行期가 되면,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이나 소유물 없이, 머리와 손톱과 수염을 깎고, 바리때와 지팡이와 물병만을 가지고, 결식으로 생활을 한다. 내가 지금 인도 아리아인들을 흉내내어 집을 떠나려고 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말년에 스스로 재산과 영지를 포기하고, 농부처럼 일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떠난, 톨스토이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위스 동물학자 포르토만(Adolf Portmann)은 동물을 두 종류로 나눈다. 망아지처럼 태어나자마자 둥지를 떠나는 離巢性 동물과 토끼처럼 태어나서 오랫동안 둥지에 머무는 就巢性 동물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 ‘둥지를 떠날 수 없는 동물’이면서 ‘둥지를 떠나는 동물’이며, 또한 ‘둥지에 머물러 있는 동물’이면서 ‘둥지를 떠나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잘 발달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 자체가 하나의 變異이다. 그것은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너무나 일찍 세상으로 쫓겨나왔기 때문이다. 왜 1년이나 먼저 나왔을까? 나는 그 과학적인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 영리한 태아는 아무리 낙원 같은 어머니 자궁이라도 너무 답답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성급하게 거친 세상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여호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기어코 그 실과를 따먹었고, 아담에게도 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나를 편안한 가정에서 거친 세상으로 끝없이 내몰고 있는 것도, 아마 쉬지 않고 일어나는 호기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낙원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 부류는 한곳에 머물러 대지에 뿌리 박고 정착한다. 다른 부류는 고향도 없이 유목민처럼 여기저기 떠돌며 산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서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그가 매일 산책하는 시간에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나는 그 반대의 길을 간 김삿갓을 잠시 생각해본다.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병연은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그 시대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20세에 집을 떠났다. 그는 5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를 방랑하였다. 불행하고 고달픈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가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 안락을 누렸다면, 그것이 더 의미 있는 생이었을까? 우리는 소유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또 아무리 많이 물질적으로 소유해 봐야 그것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한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오히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세상을 넓게 보고, 깊게 사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보람찬 삶이 아니었을까? 바위처럼 정착할 것인지, 구름처럼 떠돌아다닐 것인지 그것은 아마 팔자소관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든,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최선을 길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복 받은 인생일 것이다. 이번 생을 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존재의 신비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좋을까.
아침 6시 세종에서 버스를 탔다.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늙은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제저녁 샤워를 하고 손톱을 깎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손을 내민다. 언제 손톱을 깎아본 적이 있었던가.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니 마른 나뭇가지 같다. 마음이 찡했다. 어제그저께는 국회의원선거가 있었다. 나이 든 우리로서는 걱정이 많다. 자식들은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표를 던진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게 세상을 본다. 살날이 창창한 그들의 날들도 우리처럼 활달하고 팽창되어 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벚꽃은 지고 있고, 이따금씩 조팝나무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데 눈부시게 하얗다. 배나무 과수원도 하얀 물감을 쏟아놓은 것 같다. 아름다운 강산이다.
언제 보아도 인천국제공항은 멋지고 자랑스럽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복장으로 분주하게 걸어 다닌다. 자유로운 곳이다. 세계 10대 강국을 상징하는 이 위대한 건물에서, 나는 배낭 하나만 딸랑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난다. 지난 세대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무거운 체중을 바쳐주고 있는 발바닥아, 나는 너만 믿는다.
(2024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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