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대전고 51회 캐나다 트레킹6

이효범 2023. 7. 29. 06:03

o 대전고 51회 캐나다 로키 트레킹 6

 

구녕 이효범

 

우리의 트레킹도 이제 막바지로 들어간다. 오늘 저녁은 캐나다에 이민와서 잘살고 있는 황규진 동기가 준비했다. 3시간을 걸려 캘거리에서 싣고 온 고기로, 밴프국립공원 캠핑장에 차려진 황혼의 파티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우리는 친구가 준비한 음식을 반밖에 먹지 못했지만, 그 많은 캐나다 위스키는 모두 비웠다. 모두 즐겁게 취했다.

 

나도 취했다. 이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맞아 죽을 각오로 종군기자의 사명을 다하겠다. 먼저 우리 트레킹 팀의 내부를 그대로 보고하겠다.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 때 와인을 마시고, 호텔에 들어와서 또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는 건강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이가 드니까 우리 동기들이 모이면, 대화가 어디가 얼마나 아프고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 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여행 중이기 때문인지, 여기에서는 그런 주제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제일 많은 대화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와의 재미난 에피소드이다. 그중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키였다. 유봉현과 김진택이 학교 때는 상대적으로 컸고, 김보균과 문윤성이 작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전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길재성, 문윤성, 김보균과 장원영, 김진택, 이돈식, 유봉현 순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순서로 여러 장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나이 70에 키 싸움이라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여행이 며칠 지나니 자연스럽게 아내 이야기가 나왔다. 장원영이 제일 많이 아내 자랑을 했다. 김보균은 아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사 가겠다고 공언했다. 김진택은 카톡에 아내 이름을 운명의 여신이라고 등록했다. 유봉현은 아내 선물은 물로 개 선물까지 샀다. 이돈식은 취하면 아내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윤성은 한밤에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전화를 걸었다가,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다.

 

길재성은 나와 룸메이트이다. 나는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는 항상 여행 가방을 한약방의 약제 서랍처럼 깔끔하게 정리한다. 나는 한꺼번에 뭉쳐놓아 아침에 찾기가 바쁘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방에 들어오면, 나는 대화하지 않고 1시간 반 동안 글을 쓴다. 그동안 친구는 2차 모임에 간다. 내가 글을 마치고, 끝판에 합류하고 다시 들어오면, 나는 꼬꾸라져 코를 골고 먼저 잔다. 친구는 그때부터 자기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중의 하나는 사랑스런 아내한테 긴 보고를 하는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큰 벌집인 빅비하이브(The Beehive) 트레킹이다. 산행거리는 13.3km이고, 소요시간은 6시간이다. 아침 8시에 로키산맥의 진주라고 하는 레이크 루이스로 이동했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 ‘Lake Louise’를 통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레이크 루이스는, 물속의 석회질 성분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에메랄드 빛을 띄게 된다. 이 호수는 세계 10대 절경 중의 하나로 선정된, 자연의 전시장이다.

 

이 호수가 속한 밴프국립공원은는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1885년에 지정되었다. 캐나다 철도회사의 직원들이 우연히 이곳에서 온천을 발견하면서 관광휴양지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면적은 서울의 10배이다. 대구모의 빙하와 호수, 설산, 목초지, 온천, 야생동물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매년 수백만 명이 찾고 있는 여행지이다. 황규진의 설명에 의하면 7월에서 9월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다. 그리고 레이크 루이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스 공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히는 명소이다.

 

아침에 레이크루이스에 오니 허명이 아니었다.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는 호수를 감상하며 평지인 호숫가를 천천히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오르니 미러호수(Mirror Lake)가 나오고, 거기서 조금 더 오르니 아그네스 호수(Agnes Lake)가 다시 나온다. 아그네스는 캐나다 초기 수상 맥도날드의 부인 이름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관광객들이 힘들게 오른다. 그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눈을 들어 호수를 찬미하고, 마치 호수를 다 본 것처럼 의기양양하여 내려가면, 우리는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산길은 차분해진다. 우리는 발바닥으로 산을 느끼기 시작한다. 고도 1730m에서 시작한 등정이, 2270m의 빅하이브에 오르면, 레이크루이스를 감싸안으며, 로키 최고의 장관이 연출된다. 우리는 관광을 오지 않고, 트레킹 오기를 참 잘 했구나, 진정한 보상을 받는다.

 

나는 오늘 황규진 친구가 베풀어준 저녁 성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규진은 고등학교 때 나와 같은 3학년 6반이었으나, 솔직히 그를 졸업 50주년 행사에서 만나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 짧은 행사에서 내 옆에 앉았었는데도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는 연대 상대를 나와 29살에 캘거리로 이민을 왔다. 지금은 성공하여 여름에는 캘거리에 살고, 추운 겨울에는 미국 아리주나 주 피닉스에서 보낸다.

 

참으로 반갑고 미안하다, 친구야. 우리는 너의 정성에 눈물로서 고마움을 전한다. 너는 29살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구나.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런 소중한 과거를 모두 잃어버렸다. 너를 보니 내가 얼마나 진정한 고향을 상실하면서 살고 있는지 비로소 알겠다. 너는 고향을 멀리 떠났지만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고, 나는 고향에 살고 있으면서도 고향을 잃고 있구나. 건강하게 잘 살아라. 기회가 있으면 또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