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대전고 51회 캐나다 로키 트레깅 4
아침 8시에, 골든(Goden)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글레이셔 국립공원(1886년 지정)에 도착했다. 우리 버스를 모는 기사는 손자 손녀를 22명 둔 67세, 미남의 캐나다 사람이다. 어머니는 92세인데 요양원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모신다고 한다. 어제 밤에 못 뵈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참 좋은 일을 한다. 한국에서 온 너희 손님들을 위해, 좋은 날씨를 주십사 라고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다.
오늘의 트레킹은 애봇 릿지(Abbot Ridge) 트레일을 걷은 일정이다. 트레킹 길이는 11.5km이고, 소요 시간은 6시간이다. 우리는 고도 1225m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여러 주차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시작한 주차장은 승용차가 30대 정도, 버스도 들어가기 힘든 협소한 장소였다. 어제처럼 체조로 충분히 몸을 풀고 약간의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소달구지가 지나갈 만한 초라한 좁은 입구였다. 길바닥은 양잔디가 깔려 있었다. 왼쪽 숲 밑으로는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웅장했다. 나는 오늘의 트레일이,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끝은 장대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단체로 등산을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족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두루미과로 긴 다리로 성큼성큼 잘도 오른다. 다른 하나는 오리과로 엉덩이가 크고 보폭이 좁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길재성, 문윤성은 누가 봐도 두루미과다. 이돈식, 이효범은 오리과다. 우리는 특전사 군의관 출신인 윤성과 귀신같이 나무에 오르는 재성에게 중대한 임무를 부여했다. “제일 먼저 산에 오르라. 그리고 그리즐리곰을 발견하면 즉시 소리쳐라.” 그러면서 나는 두 친구에게 똑똑이와 똘똘이의 일화에 관해 말했다. 두 사람은 토끼 사냥을 나갔다가 곰을 만났다. 똘똘이는 도망가려고 운동화 꾼을 조였다 그러니까 똑똑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미련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너는 5초 안에 곰에게 잡히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똘똘이는 대답했다. “아니, 나는 너보다 조금만 빨리 달리면 돼.” 그러나 두 사람은 바보다. 만일 재수가 좋아 두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면, 앞으로 두 사람은 함께 사냥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리 함께 싸우다가 죽자.”라고 소리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승자이다.
긴 트레일 입구가 지나자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양손으로 포옹하기도 어려운 커다란 전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온산을 덮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 같이 비탈진 전나무의 밑동아리는 주걱모양으로 약간 굽어 있다. 많은 적설량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나무들의 처절한 생존의 흔적이었다. 일부 전나무는 아쉽게도 죽어가고 있었고, 하늘을 찌르는 장대한 전나무들은 하나같이 수염이끼를 달고 있었다. 또 수많은 전나무들은 이미 계곡에 쓰러져 널부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 깊은 숲속, 둘이 함께 가기에도 좁은 등산로를 따라, 2.5km 정도 올랐다. 수목한계선에 가까이 오자 숨 막히는 비경이 시작되었다. 계곡 저편에는 빙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하얀 선을 그으며 천 길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걷는 산의 2100m 높이의 지점에 이르자, 아주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200m는 족히 넘을 강한 암반으로 된 절벽이 병풍처럼 뒤편에 펼쳐지고, 넓은 초원에는 정갈한 바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널려 있다. 엷은 분홍색의 작은 꽃들이 온통 그 위를 뒤덮고 있다. 아, 여기는 신들이 살고 있는 신성한 땅이구나! 진택의 말대로 바로 신전(神殿)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감정마저 들었다. 숭고감은 자신을 초월하는 뭔가를 마주했을 때, 사람을 사로잡으며 감탄과 두려움을 동시에 일으키는, 아주 특이하고 드문 감정을 가리킨다. 이때 사람은 그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함과 장엄함을 경험한다. 틀림없이 여기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와서 기도했던 터일 것이다. 우리는 이 기도 터에서 점심을 했다.
이곳에 상주하는 신은 이방인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자연이 만든 신전에 귀를 기울였다. 신은 검은 구름을 뚫고 지상에 뿌리는 햇살로 말한다. 신은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 말한다. 신을 작은 꽃으로 말한다. 신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한다. 가끔 신은 침묵으로도 말한다.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산하는 동안 내내 침묵했다. 그리고 가장 뒤에 혼자 걸으면서 가끔은 뒤를 돌아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에서 무섭도록 파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6시간 30분을 소요해서 출발점에 도착했다. 계획보다 늦어진 것은 우리의 걸음이 늦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이 성스러운 신전을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의 생전에 이런 자연의 신전을 볼 수 있었음을 나는 감사한다. 우리 동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저녁은 중국식이었다. 음식보다 와인이 더 풍성한 만찬이었다. 아니 와인보다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 더 진지한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의 트레킹은 중간을 지나간다. 몸은 트레킹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세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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