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4(보르도2)

이효범 2024. 4. 17. 03:02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4(보르도2)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4(보르도2)

 

구녕 이효범

 

어제는 오후 1시 반에 숙소를 나와 7시까지 보르도 구시가지를 걸었다. 가론강(La Garonne)가에 있는 이 지역은 2007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 전체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를 떼어다 놓은 듯 했다. 규모는 작지만 건물도 유사하고, 분위기도 그랬다. 생 미셀 성당(Basilque Saint-Michel)-보르도 대극장-부흐스 광장(Place de la Bourse)과 물의 거울(Le miroir d’eau)-서점(Mollat)-생 앙드레 대성당(La Cathedrale Saint-Andre) -개선문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한국 음식점을 두 곳을 보았으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우연히 들른 서점은 놀라움이었다. 마치 옛날 서울 종로서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부는 여러 작은 방들로 이어졌지만, 규모는 종로서점의 2배 정도, 그리고 철학 코너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현재 강남 교보문고 철학 코너의 2배가 넘었다. 아니 이 작은 도시에, 이런 고풍스런 서점에, 이런 다양한 철학책들이 꼽혔다는 것이 말이 되나? 두 곳의 성당은 오래되고 압도적인 규모였지만, 내게는 어둡고, 음습하고, 내부의 활기차고 따스한 진액은 모두 빠져나가고, 앙상한 골격만 남은 상처뿐인 영광 같았다. 도시의 매력에 빠져 물 한 모금을 마시지 않고 강행군을 감행하니, 7시쯤이 되서는 어지럽고, 다리까지 절뚝거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본말이 전도되었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쓸어져 잠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 기차에서 만난 브와종이 소개한 생떼밀리옹(Saint-Emilion)에 갔다. 842, 보르도역 14번 출구에서 기다리니까 딸랑 2칸짜리 기차가 욌다. 손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기차가 20분을 달려도 포도밭이 나오지 않는다. 인삼의 본고장 금산에 가면 인삼밭이 별로 없는데, 여기가 그런 꼴인가 의심하고 있는데, 이윽고 광활한 포도밭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30분 지나 생떼밀리옹역에 내리니, 동서남북이 모두 포도밭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눈물이 났다.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조화하여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었는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린 손님이 나를 합쳐 도합 5명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했다. 역의 문은 모두 잠겨 있고 개인 주택도 없다. 그런데 3명이 한 팀인 독일 관광객들이 휴대폰을 보면서 산쪽으로 향한다. 옳지, 나도 그들을 쫓으면 되겠다. 또 그쪽이 높은 쪽이기도 했다. 한참을 올라가니 좁은 계곡으로 참으로 아름답고, 오래되고, 매력적인 마을이 나타났다.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곳을 나 혼자 왔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마을은 막 깨어나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의 피곤도 잊고 나는 정신 없이 한적한 계곡 마을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외국 관광을 와서 이렇게 많은 사진찍기는 처음이다.

 

11시 반이 되니 대충 다 둘러보았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무언가 서운했다. 마을을 벗어나 그림 같은 주변을 더 걷고 싶은데 아쉽게도 차가 없다. 안내센터에 갔다. 현찰 14.50유로면, 1시간 20, 주변 농장을 둘러보고 와인도 시음하는 프로그램 상품이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느리게 달리니 지평선 끝까지 구릉지에 퍼진 포도 농장, 그림엽서에 나올듯한 고풍스런 샤토들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는 샤토 로쉬벨(Chateau Rochebelle)에서 와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음도 했다. 이 지역은 땅 밑이 암반이다. 그곳에 굴을 뚫고 와인을 숙성시킨다. 굴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암반이 약한지 빗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분명 이곳은 보르도 주변의 유명한 와인 산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방문하지 않았다면 먼 곳 프랑스까지 와서 인류의 귀중한 보배 하나를 놓쳤을 것이다.

 

이런 소중한 문화 체험을 하고 그냥 돌아가면 그것은 문화인이 아닐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젊은 친구가 소개한 뤼트리에 피(L’Huitrier Pie)‘를 반드시 가야 한다. 아무리 비싸도 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며 음식을 맛보아야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식탁에 앉으니 무슨 알레르기가 없느냐고 묻는다. 모든 치즈가 가능하냐고 또 묻는다. 나는 옷닭도 먹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불어나 영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주문이 어려워 아예 입구에 설명된 코스 요리를 사진으로 찍어, 내용도 모른 채 그것을 달라고 했다. 음식 가짓수가 한 10개 되는 것 같다. 어떤 요리는 요리사가 직접 나와 설명을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짓고 머리만 끄덕였다. 그러나 요리가 하도 맛있어서 나는 하마트면 내가 순례 중인 것을 잊을 뻔했다. 무렵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92유로를 카드로 계산하고 신사답게 팁을 5유로 놓았다. 접대하는 여자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음식이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다음에 아내와 함께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는지 여자는 선물로 조그만 초코렛 3개가 든 작은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메르시, 마드몰라젤러.”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때 배운 어려운 불어가 튀쳐나왔다.

 

역으로 내려오는데, 앞에 와인을 든 3명의 관광객들의 걸음이 빠르다. ,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모양이다. 나는 뛰어 그들 뒤로 바짝 붙었다. 역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표를 살 수가 없다. 역은 가동이 되지 않고 그냥 폼으로만 있는 모양이었다. 안절부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기차 안에서 끊으라고 한다. 가치를 타니 문가에 서 있는 사람들로 분볐다. 나는 안으로 기어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불안했다. 마침 제복을 입은 젊은 역무원이 지나간다. 나는 일어나 나의 잘못은 절대 아니라고 하는 듯이 소리를 질러 표를 사지 못했다고 알렸다. 역무원은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한참 후에 온 그 친구는 생테밀리옹에서 탔느냐고 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하는데, 그의 눈은 딴 곳을 겨냥하고, 그냥 떠나갔다. 그리고 보르도역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승객들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역을 다 빠져나오면서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202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