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시 쓰기와 걷기1

이효범 2023. 10. 7. 20:17

o 시 쓰기와 걷기 1

 

구녕 이효범

 

1. 사람은 정신과 몸(물질)으로 되어 있다. 시 쓰기는 정신의 활동이고 걷기는 몸의 활동이다. 이원론을 주장하는 데카르트에 의하면 정신의 본질은 사유이고 물질의 본질은 연장(延長)이다. 이 두 세계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실체이다. 몸이 걷는 걸음은 셀 수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다. 걸음은 양적인 세계로 인과율적 설명이 가능하다. 정신이 하는 시 쓰기는 실험과 관찰이 가능한 세계가 아니다. 질적인 세계이다. 고도의 직관과 영감 그리고 비약과 생략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두 활동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상호작용하듯이, 걷기와 시 쓰기는 마주 보며 짝하는 부분도 많다.

 

2. 우리는 이 세상에 몸으로 온다. 하나의 몸이 시간과 공간에 좌표될 때 고유명사로서의 개인이 시작된다. 정신이 언제 그 몸에 들어오는지는 신비다. 걷기는 그 몸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걷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먹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동아프리카의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에서 네발로 걷던 동물이 두 발로 걸으면서 현생 인류(호머 사피엔스)가 시작되었다. 그 동물은 앞발이 자유로워지면서 비로소 손이 되었고, 그 손이 도구를 제작하면서 두뇌가 발달하였다. 그래서 정신이 먹이를 쫓는 것을 넘어, 위를 올려다볼 수 있게 되었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동물을 초월한 인간의 정신은 마침내 언어로 시를 쓰게 되었다. 아이가 걷기를 배우는 시기와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가 일치한다. 인간은 걷는 몸의 발로, 정신의 생각하기를 시작한다. 호머 사피엔스는 두 발로 걸어서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향했다. 이제 그들은 전 지구를 덮고 있으며, 현재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