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가을입니다. 시를 지어봅시다. 11
구녕 이효범
2-5. 시는 직유나 은유 같은 비유가 들어가면, 더욱 시답게 되고 품위를 갖추게 됩니다. 직유는 ‘A는 B와 같다’나 ‘B 같은 A’와 같은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A를 다른 대상 B에 동등하게 비유하는 것입니다. 은유는 ‘A는 B이다’나 ‘B인 A’와 같이, A를 B로 대치해버리는 비유법입니다.
김광균의 ‘秋日抒情’을 봅시다.
“落葉은 포-란드 亡命政府의 紙幣
砲火에 이즈러진
도룬市의 가을 하날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急行車가 들을 달린다
포프라 나무의 竻骨 사이로
工場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르팡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荒涼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가울어진 風景은 帳幕 저쪽에
고독한 半圓을 긋고 잠기여간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얼마나 놀랄만한 은유입니까. 누가 그 시대에 이런 은유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또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얼마나 멋진 직유입니까. 시인은 ‘사랑은 눈물이 씨앗’이나 ‘쟁반 같은 달’처럼, 너무 일상화되어 이제는 식상한 비유를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런 뻔한 비유를 쓰면 오히려 시의 품격이 떨어집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쓰지 않은 생경하고 신선한 비유를 찾기 위해, 시인은 수도자처럼 온 영혼을 받치는 것입니다.
다양한 비유를 구사할 수 있는 시인은 이제 비유를 넘어, 고도의 상징(symbol)을 시에 도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징’은 국어사전에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냄. 또는 그렇게 나타낸 표지, 기호, 물건 따위‘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꽃’으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또 다른 유명한 시인 ‘나의 하나님’을 봅시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아니 시인 김춘수의 하나님이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라니, 이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더니 그런 부정적이고 비참한 대상이 이번에는,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라니,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대상으로 바뀌다니, 시가 이렇게 모순적이어도 됩니까. 김춘수는 이 시에서 고도의 상징을 사용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혹적인 시이고, 나를 사로잡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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