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가을입니다. 시를 지어봅시다. 12
구녕 이효범
2-6. 시는 우리의 일상적인 눈으로 일상적인 풍경을 밋밋하게 그리는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가 그런 것이라면 시는 존재할 이유가 없고,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는 적어도 독자들이 받고 싶은 선물이어야 하고, 독자들을 떨리게 하는 감탄이어야 합니다. 선물로 우리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흔하고, 공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주울 수 있고, 사실 별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 쓰는 일은 우리에게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대체로 가난합니다. 그래도 시인다운 시인은 시의 세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읽으면 반성이 많이 됩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긁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는 돈이 되지 않지만, 돈이나 황금보다 더 소중한 자산입니다. 시가 소중한 자산이 되려면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것,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는 것,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 사람들을 똑바르게 걷게 하는 것, 사람들이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어야 합니다. 선물은 남에게 줄 때도 기쁘지만 자신이 만드는 동안도 흐뭇하고 뿌듯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는 먼저 자기를 위한 것이고, 그 후에 독자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시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구원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기의 유한한 시간 곧 유한한 생명을 전력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시로 자신을 찌르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희열이기도 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어봅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아무 생각 없이 경험했던 일상적인 방문이, 사실 얼마나 위대한 거동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시는 아프고 외로운 사람의 영혼에 큰 위안이 됩니다. 사람을 흔드는 이런 시를 쓰려면, 시인도 오랫동안 고독하게 흔들려야 합니다. 자기를 찌르는 가시가 자기 몸에 녹아 자기 몸과 하나가 될 때 이런 명시가 탄생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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