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가을입니다. 시를 지어봅시다.10

이효범 2023. 9. 27. 16:50

o 가을입니다. 시를 지어봅시다. 10

 

구녕 이효범

 

2-4. 시는 무엇을 설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러니 시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독자에게 너무 친절하게 세세한 부분까지 안내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과감히 압축하고 일정한 부분은 절벽처럼 뚝 잘라서 독자에게 그냥 던져주어야 합니다. 독자는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 감추어진 부분을 찾아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시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더 깊은 의미를 보충하기도 합니다. 독자의 해석이 다양한 것은 절대 흠이 아닙니다. 사실 어떤 시는 그 시를 지은 시인이 100%를 의식해서 인위적으로 완성시킨 것이 아닙니다. 시인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이 작용할 수 있고, 시인 밖에 있는 어떤 다른 힘이 은밀히 첨가되어 시를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는 오히려 오직 한 의미로만 명료하게 읽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김기림의 나비와 바다을 읽어봅시다. “아무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결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시입니다. 질긴 고기도 오래 씹다 보면 단맛이 납니다. 그런 맛은 오래 가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감추어진 맛이 나는 시가 좋은 시입니다.

 

우리가 추상미술을 감상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말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본 세계와 대상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해서 툭 던져놓을 뿐입니다. 해석은 감상자의 몫입니다. 그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사랑을 읽고 가고, 어떤 사람은 책임을 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그림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한다면, 그 그림은 쓰레기가 아니고, 존재할만한 의미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시도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오감도(烏瞰圖)’ 중에 제1호를 감상해보세요. “13인의 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3인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