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시 쓰기와 걷기 2

이효범 2023. 10. 8. 07:40

o 시 쓰기와 걷기 2

 

구녕 이효범

 

3.1 먹이를 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걷는 행위는 다양하게 진화하였다. 그중에서 시 쓰기에 가장 가까운 걷기는 몸의 생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걷기이다. 그런 걷기는 노동이 아니고 자유이며, 빠름이 아니고 느림이며, 목적이 아니고 빈둥거림이며, 속박이 아니고 일탈이며, 의무가 아니고 해방이다.

 

걷기에 대한 서양의 중요한 전통은 루소로부터 시작되었다. 루소는 전 인생을 걸쳐 세 번을 길게 걸었다. 열여섯 살 청춘기에는 안시에서 토리노까지, 졸로투른에서 파리까지, 그리고 파리에서 리옹까지, 마지막으로 리옹에서 샹베리까지 엄청난 거리를 걸었다. “나는 그 모든 부담에서 벗어나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젊은이다운 욕망과 황홀한 희망 눈부신 계획들이 나의 영혼을 가득채웠다.

 

마흔 살 전성기에는 사교계를 떠나 숲의 오솔길이나 호숫가의 산책길을 오랫동안 걸으며 명상에 잠겼다. 그는 1762126일 말제르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아무리 타는 듯한 날에도 한 시 이전에는, 내가 미처 달아나기 전에 누군가 나를 붙잡으러 올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대낮부터 출발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어느 곳을 넘어서게 된 다음에는, 구원받은 느낌으로 숨을 쉬기 시작하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나면 나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숲속 야생의 어딘가를, 내가 처음 들어온 곳이라고 믿을 수 있을, 그리고 성가신 제3자 그 누구도 자연과 나 사이에 끼어들려 하지 않을 안식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거기에서 숲은 내게 언제나 새로운 찬란함으로 과시하는 듯 했습니다. 황금빛 금작화와 자줏빛 히스의 화려함은 내 눈을 사로잡고 심장까지 와 닿았습니다. 그늘로 나를 뒤덮던 나무의 웅장함, 나를 에워싸던 묘목들의 섬세함, 내가 발로 밟던 풀과 꽃들의 경이로운 다양함 따위에 내 정신은 관찰과 감탄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 머리는 다소 피곤하지만 마음은 기쁜 채, 나는 잔걸음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물들이 주는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며, 그러나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고, 평온과 내 행복한 상황을 느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즐겁게 휴식을 취했습니다.”

 

예순 살 황혼기에 루소는 추방되어, 모든 사람에게서 거부당하고 모든 곳에서 쫓겨났다. 이때 그는 하루하루를 소진하기 위해 걸었다. 더 이상 무엇을 만들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고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걸었다. 그는 더 이상 대단한 인물이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줄기차게 흐르는 존재의 실개천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편안하게 걷다가 마음 내킬 때 멈춰서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떠돌이 생활이다. 날씨가 좋을 때 서두르지 않고 아름다운 고장을 걷는 것, 그리고 다 걷고 나서 유쾌한 대상을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삶을 사는 모든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