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여행 2

이효범 2023. 7. 8. 08:02

o 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부부 여행 2(74)

 

구녕 이효범

 

호텔 조식 후 우리는 아침 740분에 이동하는 차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사람 모두는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하얀 뭉개구름이 뭉개뭉개 피어 있었다. 60년 전 우리가 어렸을 때 풀밭에 누워 보던 그 하늘이었다. 미세 먼지는 하나도 없고 공기는 투명하고 달았다.

 

우리는 2시간 50분을 달려 후라노 지방을 대표하는 라벤더 밭인 팜토미타에 도착했다. 라벤더는 여름에 피어나는 보라색 화려한 꽃이다. 보라색은 신비로운 색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의 보이밴드 방탄소년단이 한강에서 공연했을 때도 보라색으로 강변이 뒤덮였다. 보라색은 그들의 팬클럽 색이다. 고대로부터 보라는 사람을 매혹하는 신비한 힘이 있는 색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는 고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의 비기는 보라색이었다. 그녀는 연인인 로마 장군 안토니오를 만나러 갈 때면 항상 보라색 옷과 화장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또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는 보라색을 독점했다. 자신 외에 보라색 옷을 입는 자들을 사형하며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팜토미타는 그리 광대하지는 않았지만 무섭고도 아름다운 보랏빛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우리 중에 이런 보라색 라벤더의 방문에 예의를 갖춘 친구가 있었다. 오원근과 유복진 거플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젊은 연인들처럼 70세의 나이에, 상의를 보라색으로 통일하여 잉꼬부부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것은 오원근의 제안일 리는 없고 틀림없이 어부인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어떻게 오원근은 그렇게 상냥하고 발랄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을까? 전해 들은 말로는 어부인은 대전에서 우리 대전고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던 대전여고 출신이라고 한다. 나는 호박밭에서(?) 이런 멋진 인물이 나온 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사적인 일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학교 출신들이 더 있다고 한다. 신영철, 정광우 친구의 천상의 배필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전의 명문 여학교에서 진주들을 찾아내다니, 이들은 참으로 복 받은 친구들이다. 나도 우리 집사람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봐야겠다. 혹시 대전여고 출신이라면 오늘부터 달리 대우해야겠다.

 

한 사람이 어떤 세계를 어디까지 건설할 수 있는지는 참으로 알 수 없다. 쿠바처럼 몇 명이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고, 토인비가 말하듯이 거대한 문명도 소수의 창조자가 자연의 도전에 성공하여 발생한다. 우리 친구 김보균처럼 하나의 기업도 그렇고, 이 팜토미타도 그렇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불굴의 집념이 오랜 시간을 통해 익어가면,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그 녹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40분 걸쳐 비에이(美瑛)로 이동해서 신비로운 푸른 연못을 구경하고, 대표적인 화원인 시키사이노오카(四季彩)로 이동했다. 비에이는 언덕의 고장이다. 마치 땅의 곡선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극한으로 밀고 간 곡선의 부드러움에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멀리 2000m가 넘는 눈 덮힌 연봉들이 보이고, 그 위 하늘에는 여름을 대표하는 풍경인 하얀 구름이 다양한 형상을 한 채 떠 있고, 그 연봉 중 하나에는 화산의 연기가 뿜어 나오고, 나는 무지개색 꽃들이 핀 넓은 언덕의 꽃밭 속에서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있다. ! 여기가 어디인가? 지구에 이런 매력적인 장소가 있을 수 있을까?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는 호수를 지구의 눈으로 표현했지만, 이런 감미로운 구릉은 아마 지구의 사타구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자연을 꽃밭으로 꾸민 혜안과 그 성공이 부러웠다.

 

우리는 켄과 메리 나무 밑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호쿠세이 언덕의 전망대에 올랐다가, 패치워크 길을 달려 삿포로로 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꽃을 찾아 꽃 속을 거닌 날이었다. 싱글로 온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정말 진실하고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옆에서 하루 종일 동반한 사랑스러운 아내가 아닐까. 느즈막한 인생의 말년에 이제 머리가 하얀 아내의 손을 잡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는 풍경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보기 좋은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