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대존고 51회 북해도 여행 4

이효범 2023. 7. 10. 06:18

o 대전고 51회 북해도 부부 여행 4(76)

 

구녕 이효범

 

골프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동료가 OB를 낼 때가 아니다. 18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순간이다. 다른 선수들이 우왕좌왕 못 치게 될 때 아드레날린은 하늘로 솟구친다. 홋카이도를 떠나는 오늘 아침은 가벼운 비가 내린다. 더 강하게 왔으면 좋겠다. 우리 일정은 공항 가는 길에 면세점을 들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우리나라 관광객들로 마치 재래시장처럼 비좁고 만원이었다.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것은 대부분 건강식품류였다. 이제 코끼리 밥통을 사는 밥통은 없다. 어제저녁 오오도리 공원 근처 미츠코시 백화점을 들렸을 때도 살만한 상품이 거의 없었다. 그곳에 들어온 외국계 명품점은 우리나라 백화점에도 다 있다. 한때 일본 전자제품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삼성과 LG 제품이 세계를 휩쓴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12시 치토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230분경 인천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40명 대인원인데, 아무 사고가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공항 안에서 해산하기 위해 마지막 모였을 때, 얼굴들은 짧은 여행 기간으로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언제 또다시 여행할 것인가로 기대가 넘쳐났다. 이번 여행은 참으로 품위있는 여행이었다. 어젯밤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셨어도 다툼 하나 없었다.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이라면 누군가 꼭 언성을 높이고 볼썽사나운 행동을 했을 것이다. 11시 넘어 한밤에 445호실에서 번개 미팅이 있었다. 고선근, 김동주, 김양중, 박수전, 변충헌, 손중기, 유각균, 황인방이 참석했다. 그런데 저녁에 이어 그렇게 계속 맥주를 마시면서도, 인생의 황금 시절의 화려했던 무용담은 늘어놓지 않고, 진지하게 동창회 발전방안을 논하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이번 여행은 고등학교 동창들의 부부 동반 단체 해외여행이다. 박수전 회장의 제안대로, ‘장백의 정기어린 남팔 남아의 부부 동반 해외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로, 여행이란 무엇인가? 둘째로, 부부 여행이란 무엇인가? 셋째로, 노년에 동창들이 하는 단체 여행이란 무엇인가이다.

 

우리 삶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행복일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인간의 본질인 이성을 잘 발휘해서 사유의 기능을 탁월하게 발전시킨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지적(知的)인 삶은 소수나 가능한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쉬운 길은 여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노동의 스트레스와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벗어나, 자유와 생명의 생동감을 느낀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대한 기대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떠들고 기뻐한다.

 

여행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에 한 것은 부부 여행이다. 혼자 여행할 때 가장 참기 어려운 일은 놀랄만한 비경을 본다든가 혼자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음식을 대할 때이다. 혼자 이런 놀랄만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고 죄송스럽다.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는 그런 사람이다. 아내와 여행하면 구속도 받지만 편리할 때도 많다. 물건값을 깎을 때나 남에게 실례를 해야 할 때 아내는 씩씩한 아줌마가 되어 쉽게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평생 힘든 가정을 꾸려오면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 덕택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늙어가는 남편들은 아내에게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얼마 전 우리 서울 동기회에서 여름에 단체로 한화이글스 야구 경기를 응원가자고 계획한 적이 있다. 신영철 친구가 부부 동반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세상 물정 모르는 꽉 막힌 어느 친구가, 하늘 같은 남자친구들이 모이는 장소에 웬 마누라냐고 반대를 했다. 참으로 한심한 친구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쾌쾌묵은 조선시대 사고방식에 적어있다니. 집에서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노년에 동창들이 하는 여행은 우선 편안하다. 만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도 돌아간다. 정말로 친구들이 늙어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다시 떠나는 기분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 가치관도,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인생 말년에 부담 없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이다. ‘집 나간 할배들처럼 여행하면서 새로운 풍경과 문물을 경험한다면, 우리들의 노년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공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2시간 반을 달렸다. 우리의 고속도로에는 홋카이도와는 다르게 화물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우리와 일본은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세계의 질서가 미국과 중국으로 갈리어 휘몰아치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양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손양기 가이드가 3일 동안 열변을 토한 말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오래 침묵하고 있으니 아내가 다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여보, 이번 여행은 참으로 알찬 여행이었어. 당신 친구들 다들 멋지던데. 특히 그 일본에서 오래 있었다는 옷 잘 입는 그분 말이야, 그분 아내가 말하는데, 그분은 아침밥을 본인이 직접 해서 같이 먹는다는 거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말문이 막혔다.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 북어와 몽둥이가 생각났다. 마누라를 동반한 이번 여행이 나의 인생의 최대의 실수인가. 나는 국가를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고, 다시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꺼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