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탈레스를 찾아서 4

이효범 2023. 6. 9. 20:45

o (11) 탈레스를 찾아서 4

 

구녕 이효범

 

서양철학사를 쓴 러셀은, 탈레스의 만물이 물로 되어 있다는 진술을, 과학적 가설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레투스 학파는 적어도 자신들이 세운 가설을 경험에 근거하여 시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론(가설)과 더불어 그것을 입증한 정밀한 도구와 방법을 요구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현상의 법칙을 알려고 탐구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탐구는 진리를 위한 진리’, ‘지식을 위한 지식이었다. 이것이 순수학문의 정신이다. 순수학문은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성을 통해 세계를 설명해내고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려고 할 뿐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번역되는 ‘philosophy’의 뜻과 통한다. 이 말은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philos’와 지혜를 의미하는 ‘sophia’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함 즉 애지(愛智)’라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인 이성(logos)을 활용하여, 진리를 얻고자 하는 것이 탈레스 이래 서양의 기풍이 되었다.

 

탈레스에게 보이는 지식에 대한 순수한 탐구는 기술과는 다르다. 탈레스는 이집트의 측지술로부터 삼각형의 원리를 발견했다. 측지술은 나일강이 범람하여 경작지를 휩쓸었을 때 땅을 재는 유용한 기술이다. 그러나 삼각형의 원리는 실제 생활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수학적 원리일 뿐이다. 또 탈레스는 바빌로니아로부터 천문학적인 지식을 배워 일식을 예견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일식을 국가의 길흉과 관련지어서만 보았다. 그러나 탈레스는 일식을 점성술적인 것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전체 현상으로만 이해하여, 그 주기성으로 인해, 소아시아에 일어날 일식을 예견했을 뿐이다.

 

그런데 서양 근대에 와서 이런 기풍에 변화가 생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 추리를 거부하고, 귀납추리만이 진정한 지식을 확충할 수 있다고 본 베이컨(F.Bacon), 과학과 관련된 두 개의 몽상을 제기했다. 하나는 과학의 힘으로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 지식으로 세상의 참된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자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가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외쳤을 때 의미한 것은, 경험적인 지식으로 되어 있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근대의 서양은 이런 과학적 기술의 우위에 힘입어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동양의 유학도 학문을 중시한다.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의 논어의 첫 구절에도,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되어 있다. 중용에는 이런 배움이 더욱 구체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실천하여야 한다.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게 되었으면, 능숙하게 되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을지언정 물었으면, 알지 못하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였으면, 깨닫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였으면, 분명해지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이나 유학자들은 다 같이 학문(배움)을 중시하였으나, 그 탐구의 대상이 달랐다. 그리스인들의 탐구 대상은 내 밖에 있는 자연계이었다. 그 자연의 변화와 운동이 의문이었고, 그 원리나 법칙을 찾으려고 하였다, 사람의 인식 주관과 인식의 객관적 대상이 이분적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대상을 탐구하기 위하여 그들은 논리와 도구를 발전시켰다. 이에 반해 유학자들이 보는 자연은 유기체적인 자연이다. 인간과 자연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래서 초월적으로 외재적인 자연 세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수양을 통해 자연과 합일하려고 했다. 유학에도 격물치지(格物致知)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유학의 핵심은 늘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었다. 배움의 목적도 그것에 있었다. 그래서 유학이 지배하는 동양권은 잉크, 자기, 관개 장치, 자석 나침판, 손수레, 파스칼 삼각자, 지진계, 면역 기술, 수량적 지도제작기법, 외륜보트, 방수선실, 등자쇠 등을 개발하고 사용하였으나, 서양처럼 순수한 과학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서양의 학문은 탈레스의 만물은 물이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탈레스는 여가 있는 시간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을 관찰하여 어떤 원리를 찾았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의 철학은 학문과 동의어였다, 그래서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