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탈레스를 찾아서 3

이효범 2023. 6. 8. 07:34

o (11) 탈레스를 찾아서 3

 

구녕 이효범

 

이오니아(밀레토스) 사람들은 광범위한 무역 활동을 통해서 다른 문화와 접촉했다. 이러한 접촉은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다른 풍속, 다른 정치 질서, 다른 형태의 종교, 다른 사고방식 등과 맞닥뜨린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윤리적으로나 인식적으로 절대주의가 무너지고 상대주의의 도전을 받게 된다. 평생 나일강만 접하고 산 이집트 용사들은, 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것을 진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이집트를 벗어난 용사들이, 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현상을 보았을 때, 그들은 강에 대한 이해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현상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세계만방에서 온 지혜 있는 소피스트들은 상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도전에 맞서 아테네의 부강을 진정으로 원했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절대주의를 사수했다. 삶의 통일적인 토대를 확실히 하고, 모든 규범을 의문시하는 상대주의 경향을 미리 방지하여 정체성을 추구하려 할 때, 철학과 학문은 탄생하고 발전한다. 밀레토스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학문의 발생은 단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순적이기도 한 세계가 이오니아 사람들을 상대주의적 위기로 몰아간 까닭은, 그들이 자신들의 체험에 유별나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달리 호학적(好學的)이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트라키아인들이나 스키티아인들과 같은 북쪽 지방의 사람들은 잘 발끈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고, 페니키아인들이나 이집트인들은 재화를 탐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리스인들은 배움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데모크리토스도 나는 페르시아의 제왕이 되느니보다는 단 한 가지나마 원인 규명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지적인 추구에 있어서 그리스인들처럼 낙관적이고 자신에 넘친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아니면 신화적인 풀이로 얼버무려 버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세계에 대해 취한 태도는 알레테이아(aletheia)’이다. 이 단어는 은폐되지 않음(비은폐성)’, ‘감추어져 있지 않음을 뜻하지만 보통 진리로 번역된다. 만일 우리가 진리라는 말을 알레테이아의 원래 뜻대로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는 일’, ‘모든 은폐를 제거하는 일로 이해한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분명히 진리를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감추어진 것을 태양 아래로 끌어내 밝히고 명백하게 하려는 경향이 바로 알레테이아라는 그리스어에 담겨있다. 이점이 그리스적 사유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사실은 밀레토스에서 학문의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세계를 개방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위대한 그리스 사람들은, 근원적인 앎의 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점을 그들의 꽃병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것에 빛을 비추어 밝히려고 하고, 또 모든 것을 보려고 했다. 한 마디로 호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탈레스는 다양한 현상을 탐구(historia)했다. 그런 현상을 그냥 스쳐버리거나 피하지 않고, 내 앞에 장애물로서 던져진 것으로 직시했다. 그런 현상을 문제 거리(aporia)로 삼아, 자기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탐구를 시작했다. 탐구는 현상들에 대해 그 근거를 밝히거나 설명하는 작업이다. 그런 탐구의 결과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선언했다. 그가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초의 철학자들 대부분은 질료적 근원들이 이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실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에서 최초로 생겨났다가 소멸되어 마침내 그것으로 되돌아가는데, 그것의 상태는 변하지만 실체는 영속하므로, 그것을 그들은 원소이자 아르케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것도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본연의 것은 언제나 보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이 그것에서 생겨나는 바의 그 본연의 어떤 것이, 하나든 하나 이상이든-이것은 보존되므로 -, 언제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근원의 수효와 종류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하지는 않는다. 탈레스는 그런 철학의 창시자로서 아르케를 물이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모든 것이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것과, 열 자체가 물에서 생긴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의해 모든 것이 생존된다는 것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뿐 아니라, 모든 씨앗은 축축한 본성을 갖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물은 축축한 것들에 대해서 그런 본성의 아르케다.”

 

만물이 쿼크(qua)로 구성되어 있다는 현대 과학의 주장으로 볼 때, 탈레스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치기 어린 해답으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고소를 금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물음이 있게 한 이후의 학문적 진보를 생각해보면 그 시원성(始源性)의 의의는 너무나 크다. 그러한 탈레스의 물음의 제기와 더불어 학문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딛고 있는 높은 사닥다리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그리스인들은 출발했다. 그들이 그 사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던들, 우리가 디딜 수 있는 사닥다리의 높이는 얼마나 낮았을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