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늙어감에 대하여 7

이효범 2023. 5. 28. 06:51

4. 늙어감에 대하여 7

 

구녕 이효범

 

인생 후반기에 우리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생전에 하지 않았던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나 음악 혹은 글쓰기에 몰두한다. 어렸을 때 하고 싶었으나 환경 때문에 포기했던 일들이나, 어느 날 자기에게도 그런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던 일들이다. 그런 일들을 어떤 사람은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취미로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하되 결과에는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을 성 싶다. 만년에는 약해진 몸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며, 건강을 한 번 다치면 회복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우리는 급격하게 떨어진 활력을 되찾을 수 있고,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노년의 가장 무서운 적인 고립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환상에 젖거나 아니면 거꾸로 그 인생의 황금기에 실컷 하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하고 싶은 일이 주색잡기라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결과적으로 노년에 남아있는 성적인 욕망은 생명을 윤택하게 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인생을 진을 다 빼앗는 주색잡기에 몰두하는 것은 허무한 짓이며 큰 후회가 남는다.

 

만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더 바람직한 방법은 생전에 하던 일을 더욱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사업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그 부를 빈곤이나 질병 퇴치 등에 환원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존경받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위대한 사업가 이건희가 수집한 값진 예술품들이 국가에 기부되어 우리는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음식점을 더욱 번창하게 키우는 것도 장한 일이다. 그 음식점이 고용을 창출하고, 손님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의 음식문화를 넓힐 수 있다면, 그의 노력과 헌신은 충분히 보상받아 마땅하다. 시인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불멸의 시를 남기겠다고 불면의 밤을 보낸다면 이 또한 숭고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시인이 고은처럼 노벨 문학상 운운하며 순수성을 잃고, 문단의 권력자가 되어, 자기 과시와 자기 쾌락에 집착하여 노년을 망친다면,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윤동주는 27세에 죽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지금도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 애송되고 있다. 그러나 고은은 지금 90세이다. 한국의 많은 문학상을 받고 살아생전에 화려한 영예를 누렸으나, 삶이 건실하지 못해 패가망신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젊었을 때 관심이 없었던 조상의 묘도 살펴보고, 성씨나 족보도 챙긴다. 신체가 쇠퇴하면서 암암리에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우리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존재하던 내가 어느 날 한순간 무화(無化)된다는 것은 사실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이 가져올 모든 상실과 관계의 단절을 상상해보면 소름이 솟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종교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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