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헨리 데이빗 소로를 찾아서 4
구녕 이효범
소로는 애머슨처럼 당시의 대부분의 미국인들과는 다른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 처음 이주한 청교도들은 자연(야생)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연 속에 사는 인디언들을 악마의 자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개간하고 인디언들을 죽이는 일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라고 보았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받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소명을 다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런 사명이 완수되자 그들은 새로운 자연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정복된 자연은 인간의 좋은 삶을 위한 자원이 되었다. 존 록크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 그 노동을 제공한 인간이 권리를 갖는 재산으로 바뀐다. 그처럼 미국의 주인 없는 광활한 대지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생산적인 사유재산으로 전환되었다. 무궁한 자연이 하나의 부동산으로 그리고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된 것이다. 자연은 철저하게 사유화되었으며, 그것은 권리를 갖는 주인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물질로 전락되었다. 그런데다 근대의 데카르트 이래 물질은 정신과는 달리,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죽은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자연에는 신비와 성스러움이 사라진다. 인간의 효율적인 이용만이 남게 될 뿐이다.
자연을 사랑한 소로는 그 시대의 미국인들처럼 자연을 소유하고 자연을 경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찬미하기 위해서, 용기 있게 자연의 깊은 품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갔다.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모든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살기도 했다. “한겨울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눈이 많이 쌓였을 때는 한두 주일 내내 그 누구도 내 집 근처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풀밭의 생쥐처럼 포근하게 살았다. 또는 눈보라에 파묻혀 먹을 것이 없어도 오랫동안 견뎠다는 어느 사람의 소와 닭들처럼 살았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자연과 하나로 동화된 삶 속에서 소로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대지는 살아있으며 예민한 돌기로 덮여 있다. 아무리 큰 호수라도 대기의 변화에 대해서는 시험관 속의 수은처럼 민감한 것이다.”
소로가 봄에, 철도를 놓기 위해 산허리를 깎아 놓은 절개지에서 관찰한 내용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 깎아 놓은 절개지의 양쪽에서 얼었던 모래와 진흙이 녹아 흘러내리면서 여러 가지 형상, 그중에서도 특히 잎사귀 무늬가 만들어진다. “대지가 그 자신을 외부에 표현할 때 나뭇잎으로 나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지는 내부적으로 그러한 관념을 품고 진통하기 때문이다. 원자들은 이미 이 법칙을 배웠으며 그 법칙에 의해 수태를 했다.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은 바로 여기에 그 원형이 있다. 그 잎이 지구의 내부이든 동물의 몸속이든, 내부에 있을 때 그것은 수분이 많은 두꺼운 잎(lobe)이며, 이 말은 특히 간, 폐 그리고 지방엽에 적용될 수 있다.”
대지가 살아있다는 이런 묘사 뒤에 소로는 아주 놀랄만한 상상을 전개한다. “인간이란 것이 얼었다가 녹고 있는 진흙의 덩어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손가락 끝은 진흙의 방울이 응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얼었다가 녹고 있는 육신의 덩치에서 그 한계점까지 흘러나간 것이 바로 손가락과 발가락이다. 보다 온화한 환경 아래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어디까지 확장되어 흘러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손은 열편과 엽맥을 가진 종려나무 잎이 아닌가? 귀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면 귓불 또는 방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머리 옆에 붙어있는 나무 이끼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입술은 동굴 같은 입의 위아래로 비어져나와 처져있다. 코는 분명히 응결된 진흙의 방울이나 종유석이다. 턱은 좀 더 커다란 진흙의 방울이며, 얼굴 전체에서 흘러내린 것이 만난 곳이다. 뺨은 아마에서 얼굴의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오다 광대뼈에 부딪혀 퍼진 것이다.” 그리하여 소로는 결론한다. “대자연이 내장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결국 대자연이 우리 인류의 어머니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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