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피노자를 찾아서4
구녕 이효범
데카르트가 정신과 물질 그리고 신으로 나눈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스피노자는, 그런 세계(신, 실체, 자연)는 필연적 인과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세계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인격적인 초월신도 없고, 정신의 자유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인과율로 결정되는 차디찬 세계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다른 의미에서 자유를 말한다. 이것은 필연과 모순되는 자유가 아니라 필연과 공존하는 자유이다. 필연적으로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아주 독특하게 정의한다.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는 신이 행하는 기적처럼, 인과적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이 필연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가질 때 자유롭게 된다. 필연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가지게 되면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자신의 존재와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는 자기 자신에 의해 존재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사실 신도, 자신의 자유 의지로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의하여 행동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더욱 완전하고 자유롭다.
인간도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가 신(자연)의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 존재라는 진실을 깨닫고, 그런 필연성에 합일할 때 우리는 더욱 자유롭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참다운 인식(타당한 관념)을 가져야 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세 단계의 인식이 있다. 첫째는 상상력에 의한 인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름은 불을 내기에 알맞은 물질이고, 물은 불을 끄기에 알맞은 물질임을 아는 것처럼, 막연한 경험과 관찰에 기반하는, 감각적이고 연상적인 인식이다. 둘째는 이성에 의한 인식이다. 우리는 같은 물건이라도 멀리 보면 가까이 볼 때보다 작게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태양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이성적 인식으로 우리는 자연의 법칙과 사물들의 무수한 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 셋째는 직관에 의한 인식이다. 우리는 2에 대한 3의 관계처럼 4에 관계되는 수를 구할 때, 직관적으로 6임을 안다. 직관은 어떠한 추론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직접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직관에 의한 인식을 우주 체계에 대한 인식에 적용시켜, 신적 본성의 필연성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감정(정염)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지 말고 자유인의 삶을 살라고 강권한다. 그런데 그런 자유인의 삶은 실천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인식에 의해 가능하다. 우리는 ‘영원한 상(相) 아래에서(sub specie aeternitas)’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amor Dei intellectualis)’이다. 모든 현상이 무한한 실체의 일부이며, 인간의 삶도 영원의 한 조각으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하면, 나 자신과 신 즉 자연과의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곧 나에 대한 신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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