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피노자를 찾아서5
구녕 이효범
스피노자에 의하면 만물은 코나투스(conatus)를 갖는다. 코나투스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생명 충동을 말한다. 이것은 신체적 측면에서는 유기체적 자기보존을 가리킨다. 인간 유기체가 환경에 대항하거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특징적인 형태와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코나투스이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정신적 자기보존이다. 인간 정신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대항하거나 그것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의 특징적인 동일성과 목적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모든 사물은 자신을 소멸시킬만한 반대의 성질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사물도 외부의 원인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자체로 소멸될 수 없다. 이렇게 각 사물이 자신을 보존하려는 욕구가 코나투스이다. 사람의 감정, 욕구, 행동은 모두 이것의 표현이다.
감정(affectus)은 지금의 신체 상태가 이전의 상태보다 증대되고 감소되는 이행을 뜻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감정을 정의한다. “감정이란 우리의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하거나 감소하며,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신체의 변용인 동시에 그러한 변용의 관념이라고 이해한다.” 자기를 보존하려는 코나투스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 심신을 더 큰 완전성에로 이행시키는 기쁨이라는 감정은 받아들이고, 덜 완전하게 이행시키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배제한다. 즉 기쁨이란 자기 생명력이 고양되는 것에 대한 의식이고, 슬픔은 생명력이 저하되는 것에 대한 의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주는 대상 즉 우리를 더 완전하게 하는 대상은 사랑하고, 우리에게 슬픔을 주는 대상 즉 우리를 덜 완전하게 하는 대상은 미워한다. 기쁨과 슬픔의 관계에서 사랑과 미움이 나오고 또 사랑과 미움이 여러 가지로 갈라져서 일체의 감정이 생긴다.
감정에는 수동적인 감정이 있고 능동적인 감정이 있다. 수동적 감정은 앞에서 설명한 인식의 첫 번 째 단계인 상상력에 의한 인식이라는, 부적합한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능동적 감정은 두 번 째 단계인 이성적 인식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상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념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감정이다. 여기서 ‘수동적’이라는 말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인 중 일부가 우리 외부에 있을 때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변화의 모든 원인이 우리 자신 안에 있을 때에는 ‘능동적’이라고 일컫는다.
인식의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 정신은 우리의 신체 변화에 대한 관념은 가지고 있으나, 그것의 원인에 대한 관념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감정들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는 그것들 및 그 원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것들은 극단적이고 강박적인 것이 되기 싶다. 과도한 공포, 광적인 사랑, 미움, 시기 등은 수동적 감정이 지나친 경우들이다.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격정, 본능, 충동, 세속적 여론, 인습, 미신 등의 노예가 된다. 이러한 상태를 가리켜 스피노자는 ‘인간의 예속’이라고 부른다. 감정의 노예로 산다는 말이다. 그럴 때 코나투스는 위축되고 우리는 노예적인 삶을 살게 된다.
스피노자는 능동적 감정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아니모시타스(animositas)인데 ‘합리적 자기애(自己愛)’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게네로시타스(generositas)인데 ‘합리적 이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현저하게 명료한 지식(인식)과 현저하게 능동적인 감정의 상태를 ‘인간의 자유’라고 부른다. 스피노자는 예속에서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비이성적 단계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강박의 대부분은 두 가지 착각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는 그 사건에 전적으로 책임 있는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을 명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비록 그 사건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반드시 그렇게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어난 일이 전혀 다르게 일어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증오의 감정은 감소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사건은 하나하나가 무한한 복잡성을 지닌 온갖 원인들의 끝없는 연쇄의 불가피한 결과임을 분명히 이해할 때는, 우리의 감정은 어떤 한 사건이나 사물이나 사람에게 집착하기를 그치고, 이러한 무한한 조건들 모두에게로 확산될 것이다. 우리가 후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때 다르게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한숨을 쉬며 후회한다. 이런 후회는 나를 슬픔에 빠트리고 나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그 때 내가 한 선택이, 복잡한 연쇄의 결과로 결국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성적 인식으로 내가 안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수동적 감정에 빠지지 않고, 나의 생명력도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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