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스피노자를 찾아서2

이효범 2022. 12. 17. 09:05

(3) 스피노자를 찾아서2

 

구녕 이효범

 

스피노자의 주저인 에티카(Ethica, 윤리학)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함께 가장 난해한 철학책으로 악명이 높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수학적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고나간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의 기하학적 방법에 입각하여 서술한다. 그래서 먼저 정의(定義)와 공리(公理)를 통해 형이상학적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정리를 이용하여 철학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런 증명으로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에는 주석을 통해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 이런 기하학적인 방법과 압축된 개념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의 책은 이해하기 어렵다.

 

서양 근대철학을 연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유한 실체) 그리고 신(무한실체)을 실체로 보았다. 실체(實體, substance)란 라틴어 ‘substantia’에서 파생된 말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밑에(sub) 서있음(stans)’, 모든 것의 기반이라는 의미이다. 보통 세상의 근원이나 궁극적인 본질을 뜻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실체로 보고, 실체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물체는 연장(延長, extensa))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정신은 사유(cogitatio)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 점을 비판한다. 실체는 세 개일 수 없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실체를 엄격하게 정의(定義)한다. “나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즉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가 자신 안에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존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해 생각된다는 말은, 다른 것과 상관없이 논리적으로 독립(logical independence)되어 있고, 인과적으로 자족(causal self-sufficiency)하다는 말이다. 이런 존재는 자기가 자기 존재의 원인(Causa Sui)’이자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다. 실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라면 모든 것이 실체 자체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실체는 곧 자연이다. 또 자기존재의 원인인 존재는 신일 수밖에 없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에게 말하는 하나님이 나타난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니라.”

 

스피노자에 의하면 이런 실체()는 무한히 많은 속성(屬性, attributus)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지성(오성)은 그것들을 모두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연장과 사유로만 실체의 본질을 파악할 뿐이다. 데카르트는 두 개의 실체인 물질과 정신이, 연장과 사유를 본질로 갖고 있다고 본 반면에, 스피노자는 연장과 사유를 하나의 실체의 두 속성으로 본 것이다. 또 실체()는 유한한 양태(樣態, modus)를 가지고 있다. 양태란 자연을 구성하는 개개의 물건 또는 사건이다. 이것들은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고, 실체가 잠시 동안 취하는 특수한 형식 혹은 형상이다. 이런 자연물들을 스피노자는 소산적 자연(所産的 自然, natura naturata)이라고 부른다. 소산적 자연은 나무, , 사람처럼 양태로서의 개개의 사물들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초월적 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이 아니고, 신의 변용(변화)인 양태들이다. 소산적 자연에 대해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 natura naturans)이 대립된다. 이것은 자연물들을 만들어내는 어떤 내재적 힘으로서의 자연이다. 신으로서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은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은 자연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자연 이외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은 곧 자연(Deus sive Natura)이다. 이것이 수피노자가 말하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이다.

 

이런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기성 종교(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대립된다. 기성종교는 신이 존재하며, 비록 신의 피조물이지만, 인간과 자연이 신과 독립되어 실재(實在)한다. 그러나 범신론은 이들이 각각 분리되어, 서로 구별되는 실재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인간과 자연물들은 단지 신의 양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과 인간의 교류나 교감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성 종교는 신을 순전히 정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범신론은 이 점을 거부한다. 신은 곧 세계(자연)이고, 물질적인 연장과 정신적인 사유를 속성으로 지닌 유일한 실체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