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2, me too)

이효범 2019. 8. 25. 07:21

o Me too

 

또박, 이효범

 

하늘에서 내려와

금강산 계곡물에서

막 목욕하고 나온 선녀처럼

너는 참 예쁘구나.

나무야, 이리 오렴.

벗은 몸을 만질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도끼를 버렸다.

아름다운 몸은 도덕을 초월한다.

나는 평생 도덕을 말해 왔지만

도저히 도덕적일 수가 없구나.

안개 낀 새벽

강가에서 너를 만나니

나도 사람 몸을 벗고 싶구나.

 

o 후기: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입니다. 아내는 반대입니다. 이런 생리의 차이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서로의 편안한 잠을 위해 각 방을 쓴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래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지는지,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새벽 일찍 골프를 치러 갈 때는 절대로 아침 먹을 생각을 못합니다. 마나님을 깨웠다가는 얻어맞을 것 같아 도둑처럼 까치발로 살며시 현관문을 빠져 나옵니다.

실력도 형편없는 데다 아침을 먹지 못한 나는 원하는 대로 공을 자신 있게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내기 골프에서 쓴 맛을 봅니다. 내가 잃은 돈으로 웃으며 회식을 하고 집에 와서는 이불을 쓰고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오직 한 이유, 안 사람의 내조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아침의 대 참사는 공적인 날에도 이어집니다. 내가 학교 일로 일찍 나가는 날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감고 있습니다. 거실에 불을 켜고 정장을 하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습니다. 어디 큰 소릴 칠까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평생 고생했나 싶어서 그냥 빈속으로 문을 나섭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공사장 인부들이 찾는 밥집을 몇 군데 알고 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그들 속에 끼어 김이 나는 고마운 밥을 먹으면서, 나는 살아 뛰는 신성한 노동의 철학을 배우곤 합니다.

그날도 이런 일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안개 낀 금강가를 달려 공주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전주콩나물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가에서 늘 보았던 전혀 예쁠 것도 없던 하나의 나무가 나를 향해 미소지우며 걸어왔습니다. 잎이 다진 가을 나무인데, 아직도 실가지 하나하나에 피가 도는 것처럼, 마치 계절을 거꾸로 거슬러 지난봄의 나무처럼, 생기가 넘쳐 묘한 눈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금욕을 하여 헛것을 보았나, 나는 숨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머뭇거리며 나무를 껴안았습니다. 나야, me too. 나무는 따뜻했습니다. 아내 빼고 젊고 예쁜 여자만이 나의 사랑인 줄 알았는데, , 환갑을 넘으니, 환장을 했는지, 나무와 사랑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