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소파에 대한 예의
또박, 이효범
눕지 말고
앉아라.
침대가 아니다.
당당한 소파다.
물론 당신을 위한 도구이다.
당신이 허리를 펴고 앉아 신문을 볼 때
소파는 하나의 가구가 된다.
당신이 직장에서 무너져 구부려 울 때
소파는 소가 되어 함께 따라서 운다.
과일그릇을 함부로 올려놓지 마라.
식탁이 아니라 소파다.
잡동사니로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비워두어라.
빈 소파는 그림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정신을 들어올린다.
소파가 낡았다고 쉽게 버리지 마라.
당신의 역사이다.
역사에 파묻혀 역사를 염려할 때
당신은 비로소 소파의 주인이 된다.
소파도 자기가 온 자리로 조용히 되돌아간다.
o 후기: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소파가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낡은 소파를 버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멀쩡한 소파인데 어림없는 소리라고 반대했습니다. 나이 든 아내는 언제나 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소파로는 손님을 맞이할 수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나는 못 들은 척 버텼습니다. 한국에서 아줌마로 산 여자는 소 힘줄을 지녔습니다. 나는 결국 소전에 끌려가는 늙은 소처럼 가구점에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오래된 낡은 소파는 새롭게 빛나는 수많은 소파들 맨 뒤에 숨어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결국 아내에게 분에 넘치는 식사를 대접하고 소파 사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외식으로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아내는 틈만 나면 소파를 들먹였습니다. 3일에 한 번씩 아내와 북어는 패야 제 맛인데 나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한 달간의 대치 끝에 소파를 리폼하기로 결국 합의하였습니다. 본체인 기둥과 프레임은 그냥 보존하고 현상인 가죽만 갈기로 한 것입니다. 본체까지 바꾸면 나는 아마 이 아파트에서 쫓겨날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낡은 소파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서글퍼 소파에 대한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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