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

이효범 2019. 8. 18. 22:01

o 소파에 대한 예의

 

또박, 이효범

 

눕지 말고

앉아라.

침대가 아니다.

당당한 소파다.

물론 당신을 위한 도구이다.

당신이 허리를 펴고 앉아 신문을 볼 때

소파는 하나의 가구가 된다.

당신이 직장에서 무너져 구부려 울 때

소파는 소가 되어 함께 따라서 운다.

과일그릇을 함부로 올려놓지 마라.

식탁이 아니라 소파다.

잡동사니로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비워두어라.

빈 소파는 그림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정신을 들어올린다.

소파가 낡았다고 쉽게 버리지 마라.

당신의 역사이다.

역사에 파묻혀 역사를 염려할 때

당신은 비로소 소파의 주인이 된다.

소파도 자기가 온 자리로 조용히 되돌아간다.

 

 

o 후기: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소파가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낡은 소파를 버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멀쩡한 소파인데 어림없는 소리라고 반대했습니다. 나이 든 아내는 언제나 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소파로는 손님을 맞이할 수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나는 못 들은 척 버텼습니다. 한국에서 아줌마로 산 여자는 소 힘줄을 지녔습니다. 나는 결국 소전에 끌려가는 늙은 소처럼 가구점에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오래된 낡은 소파는 새롭게 빛나는 수많은 소파들 맨 뒤에 숨어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결국 아내에게 분에 넘치는 식사를 대접하고 소파 사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외식으로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아내는 틈만 나면 소파를 들먹였습니다. 3일에 한 번씩 아내와 북어는 패야 제 맛인데 나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한 달간의 대치 끝에 소파를 리폼하기로 결국 합의하였습니다. 본체인 기둥과 프레임은 그냥 보존하고 현상인 가죽만 갈기로 한 것입니다. 본체까지 바꾸면 나는 아마 이 아파트에서 쫓겨날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낡은 소파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서글퍼 소파에 대한 시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