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5-5. 길을 걷는 사람

이효범 2022. 3. 24. 19:24

15-5. 길을 걷는 사람

 

사람은 현상적으로 보면 필연적 존재이지만 물자체로 보면 자유의 존재이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자유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자유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구체적으로는 의지의 자유를 말한다. 그런데 칸트는 그런 의지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선하다고 주장한다. 선의지(der gute Wille)는 칸트에게 도덕법칙의 최초의 출발점이자 기본전제이다. 왜냐하면 선의지가 없다면 어떤 구체적인 행위가 옳은지, 그리고 도덕적 의무라는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의지는 습관적으로 옳은 것을 지향하는 의지이다. 칸트에 의하면 행동의 동기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좋고 싫음)과 자기이익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옳은 행위를 하는 유일한 동기는 그 행위가 옳은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선의지의 인간(좋은 인간)은 의무에 맞게 행위하고, 의무자체를 위해 행위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좋은 의도(의무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려고 노력)를 가져야 하며, 의지력과 결단을 기울려, 의무인 바의 행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규칙 또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의지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있어 행위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영국의 공리주의와는 달리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그 행위를 낳은 의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참으로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밖에 없다. “이 세상에 있어서 또는 이 세상 밖에 있어서까지 라도 선의지 이외에는 무조건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적 노력의 궁극의 목표는 이런 선의지의 온전한 실현이다. 그래서 인간의 선의지가 도덕법칙과 완벽하게 일치할 때, 도덕이 궁극적인 목표로 지향하는 거룩함(die Heiligikeit)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이것을 목표로 삼아 길을 걷는 사람(homo viator)'이다.

칸트가 의미하는 선의지에 의해 동기 유발된 정신 상태를 지배하는 내적 상태는 친절, 자선심, 사랑의 태도 같이 개인 성향과 관계하는 상태가 아니고, 도덕법칙을 준수하려는 깊은 의무감 혹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심이다.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아 행위 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이다.” 이것은 의무동기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칸트는 우리에게 도덕법칙이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도덕 법칙을 직접적으로 의식한다. “도덕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선험적으로 인식하며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의 사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 이성理性이란, 경험에 앞서서, 또 경험과 상관없이, 우리가 미리부터 가지고 있는 추론 능력이다. 수학적 계산 능력은 이성 능력의 가장 단순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 능력은 하나의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고 개인이 갖고 있는 주관을 초월한다. 다시 말해서 시대와 장소 및 개인의 특성을 초월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성적 존재라면 누구나 ‘5+7=12’라는 계산을 해낼 수 있다. 이것은 고대인이나 현대인,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칸트는 도덕의 영역에서도 인간이 이와 같이 보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것은 경험에 앞서서 또 경험과 상관없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적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 중에서 수학이나 논리학의 공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도덕 법칙이다. 이것은 그 자신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증명되지는 않지만 직관적으로 자명한 것으로 전제된다. 즉 모든 다른 추론들의 출발점이자 기본 원리가 된다. 칸트는 도덕법칙이 이렇게 우리의 이성을 통해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가리켜 순수이성의 사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이런 도덕적 실천법칙은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의 형태로 표현된다. 이것은 이성적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규칙으로서, 그 자체가 지닌 가치 때문에 수락된 보편적 원칙이다. 또 정언 명령(명법)이란 그 명령의 전제가 되는 어떤 상위의 목적이 전제되지 않은 명령, 그리고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명령을 말한다.

그러면 정언명령으로 우리에게 오는, 도덕적 실천법칙으로 하여금 실천법칙으로서 타당케 하는 자격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추기 위하여 만족시켜야 할 제약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을 칸트는 네 의지의 준칙準則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Handle so, dab die Maxime deines Willens jederzeit zugleich als Prinzip einer allgemeinen Gesetzgebung gelten konne)”라고 정식화한다. 만약 무제약적 실천법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런 근본법칙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라고 칸트는 주장한다. 즉 실천법칙이 필요하고 충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원칙을 자신의 행위 원리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계속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그들의 행위 원칙으로 삼고 또 거기에 의해서 행위하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너무나 형식적인 이 원리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정식화한다. “너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하여 네가 동시에 의욕 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를 통하여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는 듯이 행위하라.” “너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나 모든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사용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 “너의 의지가 자신의 준칙을 통하여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보편법칙을 세우는 존재로 간주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너의 준칙을 통하여 너 자신이 항상 보편적 목적의 왕국의 법칙을 세우는 구성원처럼 행위하라.”

칸트는 도덕의 무제약적 실천법칙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하면서 구체적인 예증도 제시한다.

(1) 불행이 겹쳐서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경우는 어떤가? 칸트는 자기의 행위의 준칙이 정말로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될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은 생을 촉진시키는 것이 본분인데, 그러한 감정이 고통 때문에 생명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감정자체의 본분에 모순이다. 즉 생명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자연의 체계는 자기모순에 빠져 자연으로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2) 돈이 없는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돈을 갚겠다는 거짓 약속아래 자신의 이기적인 준칙을 실행하려고 할 경우에는 어떤가? 만약 지킬 의사도 그리고 가능성도 없는 약속을 함이 보편적 법칙이 된다면, 약속은 약속의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약속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거짓약속은 보편적 자연법칙으로 통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 약속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3) 훌륭한 소질을 지니고 있으면서 환경이 좋은 탓으로 재능을 연마하지 않고, 향락으로 소일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라는 말은 자기 소질이 유용한 목적을 위해서 연마될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가 자연법이 되기를 의욕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향상을 위해 가능하면 노력해야 한다.

(4) 넉넉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궁한 사람을 자기와 무관한 일로 전혀 동정하지 않는 경우는 어떤가? 이것은 내가 남의 원조를 바라지 않으므로 나도 남을 원조하지 않겠다는 준칙이다. 이것은 자연법칙에 모순되지는 않지만, 자기가 역경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야 할 경우를 보면 자연법칙으로 의욕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타인을 가능하면 도와주어야 한다.

칸트에 의하면 이런 도덕법칙은 명령의 형태를 띈다. 그것도 조건에 따라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가언(조건, hypothetical) 명령이 아니라, 무조건 해야만 하는 정언명령이다. 도덕 법칙이 위와 같이 명령의 형식을 띠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그것을 따르는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항상 당위當爲(Sollen)혹은 의무로 다가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는 도덕 법칙을 따라야 하는 자와 도덕 법칙을 부과하는 자가 동일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도덕 법칙은 이렇게 외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의해 부과되는 것이므로 이는 타율他律이 아닌 자율自律의 성격을 띈다. 둘째는 이 양자가 동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자기라는 점이다. 전자는 현상계(감성계)에 속해 있으면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반면, 후자는 본체계(예지계)에 속해 있으면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연(존재)의 세계와 도덕(당위)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으면서, 전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후자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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