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5-3. 이중적 존재

이효범 2022. 3. 23. 08:01

15-3. 이중적 존재

 

앞에서 보았듯이 칸트에게 세계는 현상계(phenomenon)와 본체계(예지계, noumenon)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인간도 이 두 세계에 속하게 되는 이중적 존재가 된다. 그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필연적인 인과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경험의 주체로서의 감성적 존재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지계에 속하는 존재로서, 자유 의지를 갖고 도덕적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감성계의 주관에 있어서는 우리는 첫째로 경험적성격을 가질 것이다. 이런 성격을 통해서 주관의 행위는 현상으로서 항존적恒存的 자연법칙에 좇아서 딴 현상들과 철저하게 연결되게 되겠고 (---) 둘째로 사람은 감성계의 주관에 대해서 경험적 성격 외에 가상적 성격을 허용해야 하겠다. 이 성격을 통해서 주관은 확실히 현상으로서의 자기 행동의 원인이기는 하나, 그러나 가상적 성격 자신은 감성의 그 어떤 제약에도 종속하지 않고, 그 자신 현상도 아니다. 우리는 첫째 성격을 현상 중에 있는 사물(경험적 자아)의 성격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둘째 성격을 물자체의 성격’(자아 자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는 신이나 영혼처럼, 상계에 속하지 않고 물자체인 본체계에 속한다. 그런 물자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가 자유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직관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칸트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할 도덕적 실천법칙이 존재한다는 전제로부터, ‘인간의 의지는 자유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너는 해야 한다(Du sollst)’라는 도덕법칙에 대한 의식은 너는 할 수 있다(Du kannst)’라는 자유에 대한 의식과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도덕법칙은 법칙을 자신에게 부과된 것으로 인식하는 존재에게는, 자유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현실성을 증명해준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 자유는 인식론적으로 직관되는 것이 아니고 도덕적으로 요청要請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있어서 의지의 자유가 요청된다고 해서, 없는 것을 막연히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실재하지만 다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칸트가 말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무엇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자신이 원인이 되어서, 어떤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자유는 이성적 존재가 이성의 법칙을 따름을 의미한다. 즉 이성적 존재의 자기 한정限定 즉 자율自律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식욕과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은 우리밖에 주어진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이 길로 가고, 갈증을 해소하려고 저 길로 간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어떤 맛으로 주문할지 결정한다고 치자. 초콜릿? 바닐라? 아니면 에스프레소와 바삭한 과자를 얹은 아이스크림? 이는 언뜻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어떤 맛이 내 기호에 가장 잘 맞는지 파악하는 행위이며, 여기서 내 기호는 애초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칸트는 기호를 충족하는 행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이때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바닐라보다 에스프레소와 과자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욕구일 뿐이다. --- 내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든, 사회적으로 훈련된 것이든,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은 아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 밖에 주어진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이와 정반대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즉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저 밖에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 바로 이것이 사람과 사물의 차이점이다. ”

 

내 의지가 자율적으로 결정될 때만이, 내 의지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될 때만이, 나는 자유롭다.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 의지가 내 외부에서 결정되는 것(우리 밖에 주어진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타율적으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 때 나는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칸트의 자유 개념은 본체적 자아와 연결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의지의 자유란 어떤 상태를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가 어떤 외적 세력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외적 세력에,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회적.역사적 제약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타고난 경향성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현실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한낱 타율의 근거이자 경험적인 제약들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는 인간이 두 가지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칸트의 인간관과 만나게 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한편으로 동물과 공유하는 측면, 즉 본능적 욕구들(경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만이 지닌 측면, 즉 이성(자유 의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후자만이 진정한 이다, 따라서 이 후자인 본체적 자아가 전자인 현상적 자아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가 바람직한 상태이자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칸트의 자유 개념은 이제 인격개념으로 연결된다. 칸트에 의해 존엄성을 지닌 것으로 표현되는 인격은 오로지 이 본체적 자아와 관련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덕법칙을 세우고 그것을 따를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나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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